“로이스 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방에서는 우리 서로 ‘님’으로 불러봐요. ‘보고’가 아닌 ‘토론’을 해요. 좋은 대화는 잘 설득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설득 당하는 사람이 만듭니다.” 새로 근무하게 된 직장 사무실 한쪽에 붙여놓은 문구다.
30년 직장생활 만에 처음으로 한국 회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가장 걱정한 것 중의 하나가 조직 문화였다. 그 어떤 회사보다 더 수평적이고 개방적이고 유연한 조직문화를 가진 구글 안에서도 ‘가장 구글스럽다’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틀에 얽매이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해왔기 때문에 그 걱정은 더 컸다. 또한 실리콘밸리 구글디렉터라는 타이틀을 뒤로하고 1년 반을 마트 알바생과 바리스타 같은 시급 노동자로 고정관념을 깨는 삶을 살아왔던 터였다. 이렇게 ‘비전통적’인 나에게 그룹 전체 대내외 브랜드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긴 회사로부터 “그래서 로이스님과 일하고 싶다. 그냥 로이스님답게 일해달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안심이 되었고 용기가 생겼다.
유연성, 다양성, 포용성 등이
MZ세대 붙잡는 기업문화 특징
수평적 회의 분위기부터 중요
기업 브랜드는 회사빌딩을 장식하는 로고나 벽 한쪽에 붙어있는 경영 슬로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회사 구성원으로부터 시작된다는 평소 생각에 입사하자마자 구성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두 달 동안 150여명과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그 결과 회사에 대한 만족도를 결정하는 요소로 연봉만큼 중요한 것이 좋은 기업 문화와 그것이 주는 자부심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언스트앤영(EY)과 딜로이트 연구에 따르면 기업문화의 가치 중 다양성, 포용성, 유연성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이런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문화는 세상을 바꾸는 혁신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특히 요즘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에서는 기업문화 가치가 충족되었을 때 직장 만족도가 높아지고 이직률이 현저하게 낮아진다. 젊은 직장인들 80% 이상이 자신의 문화 가치와 일치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한 보고서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좋은 회사 문화는 아침 막히는 도로에서 시달리거나 부대끼는 지하철을 타면서도 기분 좋게 출근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첫 출근을 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내 사무실 방문을 열어 놓는 일이었다. 자동으로 닫히는 문을 늘 문받침으로 받쳐 놓으니 시설팀에서 자동 개폐 장치를 아예 떼어 주었다. 문을 항상 열어놓으면 직원들이 조심스럽게 노크하며 들어오는 게 아니라 그냥 “안녕하세요” 하면서 바로 얘기를 걸 수 있다. 직원들과의 심리적 벽을 없애고 접근성도 높인다.
그래도 늘 부담스러운 건 내 방, 소위 ‘임원방’에서의 회의다. 직원들이 편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스포츠 경기에서 홈게임과 원정게임이 있는 것처럼, 내 방에서 회의하면 그 자체로 직원들은 벌써 수평적이지 않은,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게임하는 듯한 위축감이 들지 않을까 우려됐다. 회의실을 따로 잡는 게 번거로워 임원방에서 회의를 하긴 하지만, 늘 직원들이 응원군 하나 없는 원정 게임에 와있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하고 있다. 토론할 때 정말 ‘계급장 떼고’ 얘기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런 의미로 내 방 한 귀퉁이에 ‘로이스방 오픈 대화 규칙’ 문구를 써놓은 것이다. 내 방을 처음 방문하는 직원들은 “로이스 부사장님”을 그냥 “로이스님”으로 부르는 것을 어색해하지만, 이내 서로 ‘님’자 호칭에 익숙해지면서 저절로 하하, 허허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양방향 대화가 되고 있다. .
또 여건이 허락된다면 종종 걷는 회의를 한다. 통상 회의에서는 슬라이드와 필기구가 동원되면서 양방향 토론보다 발표자의 일방적 독백이 되기 쉽다. 걸으면서 회의를 하다 보면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손에서 펜을 놓고 오롯이 대화 내용에만 집중하며 이야기할 수 있다. 마침 회사 근처에 올림픽공원이 있으니 걷기 회의로 딱이다. 함께 걸으면 위계가 자연스럽게 녹아내리고 수평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거기에 운동도 되니 일석이조다.
입사 전에 괜한 걱정을 했다 할 정도로 회사 내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리더십도 있고 틀을 깨는 사람들도 꽤 있다. ‘책임을 지는 것을 싫어한다, 승진을 거부한다’ 등으로 매스컴에서는 일부 MZ세대의 직장 트렌드를 전체처럼 얘기지만, 젊은 세대들의 생각은 다양하다. 한가지 공통적인 것은 직장생활은 즐거웠으면 하고, 회사에 대해 자랑하고 싶어한다. 일하기 좋은 직장, 자랑하고 싶은 직장, 이것이 내가 하는 브랜딩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런 사내 브랜딩을 일구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며, 언제부터 ‘시~작!’하고 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작은 씨앗도 자라고 커지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정김경숙 한미그룹 브랜드본부 부사장·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