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우리는 이열치열이라며 펄펄 끓는 삼계탕을 먹거나 정반대로 얼음 띄운 냉면, 냉국을 먹으며 더위를 식히지만 중국은 아니다. 너무 차거나 뜨거운 음식은 몸에 좋지 않다며 피한다.
찜통 속에 들어앉은 것처럼 무덥고 습하며 끈적끈적한 여름날, 중국인은 무엇을 먹으며 무더위를 견딜까? 당연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여름 음식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전통 여름 음식 중 하나는 동과탕(冬瓜湯)이다.

동과탕 한 그릇이면 열기를 진정시켜 더위를 물리칠 수 있고 그래서 여름을 가뿐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인데, 동과탕 도대체 어떤 음식일까?
이름으로 봐서 동과를 넣고 끓인 따뜻한 국물 음식인 것은 알겠다. 하지만 동과라는 낯선 이름의 채소는 또 무엇일까? 겨울 동(冬) 박 과(瓜)자를 섰으니 겨울 박이라는 뜻이지만 어쨌거나 듣도 보도 못한 식물인 것 같지만 익숙하지는 않아도 그렇다고 완전 생소한 열매도 아니다.
크고 긴 호박처럼 생긴 이 열매, 우리한테는 동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고 주로 장아찌나 무침 등으로 먹으니 아는 사람은 아는 채소다.
겨울 박, 영어로 윈터 멜론(winter melon)이라는 이름의 동과라는 열매, 얼핏 겨울에 먹거나 겨울에 수확해서 생긴 이름일 것 같지만 아니다. 완전히 익으면 껍질에 하얀 가루가 생기는데 그 모습이 마치 겨울에 내려앉은 서리 같아서 지어진 이름이다. 주로 여름에 먹는 열매이니 아마 더운 날, 겨울철 서리를 떠올리며 더위를 잊으려는 의도의 작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동과탕이 전통 여름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배경이 그런 '뇌피셜'이 작용해서는 아니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동과가 여름 더위를 물리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중국 전통 의학서에서도 동과의 효능을 누누히 강조한다. 예컨대 『본초강목』에 동과는 더위를 가라앉혀 열독을 없애준다고 했다. 나아가 갈증을 멎게하고 붓기를 내려준다고도 덧붙였다.
청나라 때 음식 양생서인 『수식거음식보(随息居飮食譜)』에서도 동과는 열을 내리고 더위로 인한 어지럼증을 막아주며 위를 편하게 해준다고 언급했다. 심지어 전설에 나오는 신농씨가 완성했다는 중국 최초의 의학서라는 『신농본초경』에서도 동과의 효능을 언급하고 있으니 동과탕을 먹으면 여름 더위를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의 뿌리가 꽤 깊다.

이런저런 이유로 중국에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동과탕이 발달했다. 특히 건조해서 뜨겁기만 한 북경 지역보다는 더운데 습도까지 높아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황하 이남, 양자강 이남 그리고 광동 지역에서 특히 즐겨 먹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은 동과자라국(冬瓜鱉裙羹)이고 가장 대중적인 것은 동과갈비탕(冬瓜排骨湯)이다. 이 밖에도 조개동과탕 해물동과탕 옥수수 동과탕 등등 지역별로 혹은 입맛과 주머니 사정에 따라 먹을 수많은 종류의 동과탕이 있다. 뒤집어 말하면 중국에서 여름 음식으로 그만큼 광범위하게 사랑받아왔다는 뜻일 것이다.
동과탕 중에서도 최고의 여름 보양식으로 꼽히는 것은 동과자라국으로 대표적인 중원 지역이며 삼국지 적벽대전의 무대이기도 했던 양자강 중류 형주(荊州) 지방의 8대 진미 중 하나로 꼽는 요리다. 형주는 수륙 운송의 중심지로 예로부터 중국식 표현처럼 물산이 풍부했던 곳이니 그만큼 맛있는 요리가 발달했던 곳이다.
이런 형주에서도 진미로 소문났던 음식으로 단순히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보양식이기 때문이다. 동과가 왜 여름에 좋은지는 덧붙이면 사족이 될 것이니 생략하고 자라 자체도 중국에서 최고로 꼽는 강장식품이지만 그중에서도 동과자라국은 자라 별(鱉) 치마 군(裙), 즉 자라 치마살로 끓인 국(羹)이다.

참고로 치마 군(裙)은 고기 중에서도 가장 연하고 맛있는 부위에 부치는 명칭이라고 하니 최고 강장식품인 자라 중에서도 제일 맛있고 몸에 좋은 부위로 끓였다는 소리다.
여름 보양에 정력까지 북돋아 주는 강장 보양식이니 군침을 흘릴만한데 관련해 전설도 있다. 11세기 북송 때 황제인 인종이 형주의 중심지인 강릉(江陵)태수 장경에게 미식으로 유명한 강릉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요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장경이 망설임 없이 동과자라국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고, 이후 동과자라국은 송나라 궁중요리로 명성을 떨치게 됐다는 것이다. 그만큼 유서 깊은 요리다.
그러면 동과탕, 과연 맛있을까? 따뜻하면서 한국적 느낌으로 시원한 맛이지만 처음 먹어본 한국인한테 긍정적인 반응을 들어 본 적은 별로 없다. 음식 맛이야 주관적이니 함부로 평가할 것은 아니고 어쨌든 중국의 전통 여름 보양식이라니 기회가 있으면 한번 맛보는 것도 좋겠다. 중국을, 중국 음식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참고가 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