쏙독새와 후투티의 땅에서, 재생에너지를 다시 묻다

2025-04-20

독일 베를린에서 차를 타고 2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곳은 브란덴부르크주 남동부, 옛 소련의 군사 훈련장 부지였던 리베로즈 지역이다. 1990년대 초까지 사용된 이 땅은 브란덴부르크주 전체에서 가장 큰 훈련 장소였다. 현재까지도 출입이 금지될 정도로 미회수 폭발물 등 군수 물품에 오염되어 있다. 동시에 군대가 떠난 군사 훈련장을 유럽 쏙독새, 후투티 등 탁 트인 초지를 선호하는 야생 조류들이 번식지로 삼았다. 이 지역은 유럽연합(EU) 지침에 따라 철새 및 멸종 위기에 처한 특정 조류의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한 조류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2009년 이곳에 52㎿ 규모의 태양광 발전 시설이 건설되었다. 그런데 입지 선정이 좀 독특하다. 독일 연방건축법은 ‘도시 외 지역’의 개발행위를 엄격히 제한하기 때문이다.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설비가 특례허용 대상일지라도 개발 제한이 적용된다. 또한 독일에서는 개발사업 추진 시 자연환경 훼손의 정도를 평가하고 그 영향을 보상하도록 하는 ‘자연침해조정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말리스 라저 브란덴부르크주 환경부 계획승인국 담당관은 “부지 선정의 핵심은 지역계획의 수립”이라며 “리베로즈 지역은 과거 군사 오염지역이기 때문에 투자자가 오염을 복원하겠다고 한 것이 프로젝트를 승인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미회수 군수 물품으로 인한 토양, 지하수의 2차 오염을 방지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돼 공공성이 높은 사업으로 간주된 것이다.

독일의 대표적인 생태단체인 나부(NABU)의 크리스티아네 슈뢰더 브란덴부르크 사무총장은 “독일은 개발사업을 추진할 때 자연침해조정제도가 유효한 정책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계획과 지구단위계획, 사후 모니터링 과정에 지역사회와의 신뢰에 기반한 협력과 감정 평가, 일관된 사후 관리, 시민 모니터링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한편, 지난 독일 정부는 ‘풍력에너지 입지 의무화법’을 통해 2032년까지 각 주마다 국토 면적의 2%를 육상 풍력 발전에 할당하도록 규정했다. 이 계획은 복수의 지자체가 함께 세우는 지역계획을 통해서 공간적으로 구현된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계획이 주로 발전량을 목표로 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재생에너지 입지를 위한 공간계획이 아직까지 거의 수립되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리베로즈 태양광 발전소가 위치한 슈프레나이제 군청 건설 및 지역계획 담당자인 크리스티안 티셔는 “전기사업자가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를 판매해서 납부하는 법인세가 지자체 입장에서는 매우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티셔는 “지역 사회 내 정당이나 환경단체의 우려가 있었지만, 실제 공간적으로 태양광 발전소를 배치하는 지구단위 계획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다양한 의견 수렴이 가능하기 때문에 합의에 기반하여 사업이 추진되고 비교적 갈등이 적다”고도 설명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에버스발데시 피노우 태양광발전소 사례를 보면, 지역 대학교가 기획 초기 단계부터 개입해 태양광발전소 설계 및 모니터링 계획을 함께 수립했다. 이는 과학 기반의 설계를 가능하게 했다. 지역 환경 전문가가 직접 설계에 참여하고, 시민사회가 꾸준히 모니터링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공적 감시와 과학적 설계가 함께 작동해야 재생에너지와 생태계의 ‘윈윈’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리베로즈 태양광 발전소 현장에서 만난 환경단체 분트(BUND) 브란덴부르크 지부의 악셀 하인첼-베른트 대변인은 “화석연료 발전소를 재생에너지로 신속하게 전환해야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위한 넓은 부지 확보도 필수적”이라며 “분트 브란덴브루크의 경우 8500명의 회원들이 수차례에 걸친 치열한 토론을 통해서 재생에너지를 위한 공간이 국토 면적의 2%가 필요하다는데 동의했으며, 대신 숲이나 보호구역이 아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악셀 대변인 뒤로 드넓은 초원과 군데군데 자란 하얀 수피의 자작나무와 리베로즈 태양광 발전소 부지가 펼쳐져 있었다. 새소리가 울려 퍼지는 태양광 발전소는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정부와 전문가,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가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고민과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기 때문에 전력 부문 탄소중립이 반환점을 지났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서도 생태 보전이 가능했을 것이다.

공간계획과 침해조정, 거버넌스를 통한 재생에너지 공존모델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생물 다양성 보전목표의 중간 점검을 이제 고작 5년 앞둔 한국 사회 역시, 더이상 늦추지 말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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