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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주팔자에는 火가 둘씩이나 들어 있어
한여름이면 뜨거운 火의 기운이 자리를 잡고
몸 어딘가 박혀 있는 불의 씨앗들을 한꺼번에 지펴,
나는 붉게 붉게 피어나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답니다
불갑사 퇴락한 절간 뜰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상사화를 바라보면서,
푸른 이파리 하나 돋아날 겨를도 없이
붉은 화인으로 마구 찍어댄
저 무지막지한 불길의 꽃잎들을 바라보면서,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는 내 속엣것들이
저렇듯 쏟아져나간 게 아닌가, 가슴이 뜨끔한 것도
火의 저 뜨거운 치정들을 이열치열로 맞받아치지 않고는
나나 저 꽃들이나
제 삶의 여름나기가 녹록지 않은 탓이겠지요
◇송정란= 1990년 <월간문학> 시 부문 및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등단. 시집 ‘불의 시집’, ‘火木’, ‘허튼층쌓기’ 등.
<해설> 사주에 火가 둘이라니! 여름을 참 견디기 힘들겠다. 붉게 붉게 피어나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는 이유를 시인은 꽃의 입장을 빌어 꽃의 말로 조곤조곤 고백하고 있는 그런 시다. 해서 데려온 꽃이 불갑사 퇴락한 절간 뜰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상사화다. 상사화를 시인은 붉은 화인으로 마구 찍어댄 저 무지막지한 불길이라 비유한다. 이만하면 놀라운 직관 아닌가. 火의 저 뜨거운 치정들을 이열치열로 맞받아치지 않고는 나나 저 꽃들이나 제 삶의 여름나기가 녹록지 않은 탓! 火가 花로 환승하고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