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왜 류준열 연기만 믿으시나이까 [정지은의 리뷰+]

2025-03-24

길을 가다가 우연히 떨어져 있는 돈을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돈이 궁했는데 신이 나를 돕네"라고 생각하는 사람, 혹은 "예전에 돈이 필요했는데 왜 지금에서야 주는 거야"라고 원망하는 사람,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일텐데, 나를 시험에 드시게 하는구나"라며 무시하고 지나가는 사람 등. 단순히 우연이라 치부할 상황임에도 신이란 존재가 믿음에 개입되는 순간 사람들은 다양한 관점을 내놓는다. 영화 '계시록'(감독 연상호)은 사람들에게 똑같이 주어진 상황 속에서 '믿음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조명한다.

*이 글은 '계시록'의 내용과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그 XX, 하늘이 돕는구먼."

◇믿음이란 이름의 광기...멋대로 해석한 '신의 뜻' = '계시록'은 사명의 나라 교회 담임목사 민찬(류준열)과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형사 연희(신현빈)가 성범죄자 양래(신민재)를 두고 각자의 신념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예배를 보던 민찬은 자신의 교회에 다니는 여학생을 쫓아 교회로 들어온 양래를 마주친다. 민찬은 양래의 발에 채워진 전자발찌를 봤지만 “교회는 죄인들이 오는 곳”이라며 선교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양래의 방문이 있고난 후 갑작스레 자신의 자녀가 사라지자 민찬은 앞선 신념이 무색할 정도로 양래를 유괴범으로 확신한다. 성범죄자 조회로 양래의 주소를 확인한 민찬은 무작정 양래의 집앞으로 찾아가고 으슥한 산기슭으로 향하는 그를 뒤따라간다. 이 과정에서 민찬은 외길에서 양래를 마주치게 되고 몸싸움에 휘말려 의도치 않은 살인을 저지른다. 하지만 폭우 속 내리치는 번개 속에서 예수 형상을 본 민찬은 범죄자를 단죄하는 '신의 뜻'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자신의 살인을 은폐한다. 폭우로 인해 살인에 대한 모든 살인 증거가 소실되고, 여러 가지 우연들이 겹쳐 양래의 목숨이 민찬의 발아래에 놓이는 상황들로 이어지자 믿음이 불붙인 민찬의 광기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60분이면 충분...122분 채운 지루함에 '하품만' = 좋게 말하면 잔잔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지루하다. '계시록'은 형사들이 쫓아오는 상황 속에서도 범죄를 은폐하고 양래를 쫓는 민찬의 모습을 보여주며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면이 느리게 흘러가고 배우들의 연기에만 기댄 듯한 모양새다. 민찬이 아내에게 간음죄를 캐묻는 장면, 연희가 죄책감에 시달리는 장면들에서 배우들의 연기, 특히 류준열의 연기는 압도적이나 '과연 이 장면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인 지점이다.

전체적인 긴장감이 떨어지다 보니 관객들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때려야 하는 반전 결과에서도 다가오는 전율이 그다지 크지 않다. 동명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 작품이라는 점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스토리라인이 단단하지 않고, 그저 인간들의 추악한 부분만 보여주는 연출만이 담겨 찝찝한 감정만을 유발한다. 특히 재연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분장을 한 동생이 나와 귀신 행세를 하는 신이 자주 등장하는데 실소만 터질 뿐이다. 나름의 점프 스케어를 선사하며 관객들을 공포에 젖게 만들려던 시도는 알겠으나 신선하지 않은 연출과 맞물려 실망감만 자아낸다.

관련기사

  • "26일 전에 꼭 사야 해" 품절 대란 일어난 ‘이 케이크‘, 3만 9000원으로 가격 인상
  • 손가락 먹는 감귤나무…가지치기 절단 사고 제주서만 ‘하루 7건‘ 발생
  • "지하철역에 폭탄 설치했어" 20대 협박범의 ‘최후‘…실형 선고
  • "일본 여행, 지금 가면 제일 좋아요"…여행업계, ‘벚꽃 시즌‘ 노린다

◇2022년 작품 맞나요...앞뒤 안 맞는 '범죄 미화'= 인간의 내면에서 발생하는 딜레마에 대해 논하는 작품은 캐릭터가 가진 서사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야만 호응을 얻는 법이다. 하지만 '계시록' 속 인물들의 감정선은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따라가기 힘들다. 민찬이 광기에 물든 후반부는 차치하더라도 초반부에서 자녀가 없어졌다는 말에 곧바로 한 번 본 양래의 집을 찾아간다거나, 이후 성격까지 변하면서 살인들을 주도하는 행동 등이 그렇다. 그에게 명분이란 그저 대사만으로 표현되는 '신의 뜻'일 뿐이다.

더불어 작품의 배경 또한 현실과 다른 위화감이 느껴진다. 작품 속 연희의 동생은 양래에게 험한 일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양래가 학대를 받았던 과거가 세간에 밝혀지며 동정심을 얻자 사회적 분위기에 상처받아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작품 바깥에 있는 현실을 보자. 요즘 같은 세상에 성범죄자가 학대당한 과거가 있다고 해서, 그 성범죄자를 동조하고 미화하는 인간이 존재하냐는 말이다.

예시로, 지난 2020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성착취범죄 'N번방 사건'이 터졌을 때 주범 조주빈이 기자들 앞에서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자 이를 본 국민들은 "악마가 아닌 비겁한 범죄자일 뿐"이라고 지적하고 나섰으며, 언론은 조주빈의 과거 선행이 드러난 시점에서도 이를 미화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또 다른 예로, 지난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 또한 "왜 유영철에게 이름 대신 '레인코트 킬러'라는 닉네임을 붙이냐", "범죄자를 미화하지 말라"는 비판에 직면하며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논쟁이 이미 일어난 후인 2022년에 웹툰으로 풀어내고, 2025년에 영상으로 공개된 '계시록' 속 배경이 어째서 이렇게나 사회적 분위기를 담지 못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공감을 얻기 힘든 흐름 위에 연희라는 캐릭터가 있기까지의 설정들을 쌓아 올렸으니 단단하지 못함이 당연하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뒤죽박죽이다. 그토록 “범죄자의 과거에 왜 서사를 부여하냐”던 연희가 “권양래를 알아야겠다”며 자신의 동생을 벼랑 끝으로 내민 정신과 교수를 찾아가는 것 또한 기가 차는 선택이다. 이토록 애매한 스토리, 엉성한 떡밥 회수, 공감되지 않는 감정선을 이해하고 일정한 메시지로 해석하길 바란다면, 시청자들이 민찬처럼 '아포페니아(관련없는 사물 사이 의미 있는 연결을 인식하는 경향)' 환자가 되길 바라는 제작자의 욕심이 아닐까 싶다. 2025년 3월 21일 넷플릭스 공개.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