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탔지만 혼자가 아니다…AI, 차 안의 모든 것 보고 있다

2025-01-19

운전자 얼굴 움직임·표정 파악해

문 여닫고 시동 거는 등 AI 진화

편의성 뒤엔 사생활 침해 ‘그림자’

위치 수집은 기본…음성까지 저장

시민 감시·통제에 악용될 가능성

집 근처에 맛있는 토스트 가게가 생겼다. 들렀다가 주정차 위반 딱지를 끊었다. “차를 잠시 세우는 건 괜찮다”는 직원의 말을 믿은 게 화근이었다. 토스트는 생각보다 조리에 많은 시간이 걸렸고, 며칠 뒤 서울시청이 보낸 모바일 전자고지 알림톡에서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폐쇄회로( CC)TV에 찍힌 자동차 번호판이 얼마나 선명한지 달리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실시간 감시 시스템의 위력을 새삼 확인한 순간이었다.

세계 1위 자동차 판매 업체인 일본 도요타가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5 무대를 빌려 지난 5년간 일본 후지산 기슭에서 축구장 100개 규모로 추진해온 ‘우븐 시티’의 현황과 미래를 공개했다. 직물을 짜듯 인공지능(AI)이 도시의 모든 공간을 촘촘히 연결하는 스마트 세상이다. 계획대로라면 이곳 거주민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운전자 없는 자율주행 차량과 플라잉카를 타고 이동할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집사’ 수준의 로봇과 동거하며 손 하나 까딱 않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24시간 들여다보는 AI가 알아서 부족한 걸 메꿔주고, 필요한 걸 채워주기 때문이다.

이번 CES의 최대 화두는 AI였다. 참여 업체들은 저마다 AI가 가져올 미래의 변화상을 제시했다.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류의 앞날은 과연 장밋빛이기만 할까. 산이 높은 만큼 골이 깊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긴다. AI 기술도 마찬가지다. 편의성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지만, 인류는 반대급부로 사생활을 송두리째 내어놓아야 한다. 지금의 기술 발전 속도라면 온전한 자유와 해방을 누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은 원천적으로 사라진다는 뜻이다.

자동차 안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운전대에 앉아서도 세상과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대화와 표정이 모두 녹음되고 기록된다. 자율주행 기술·소프트웨어 시스템과 연동된 커넥티드카의 등장으로 자동차가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 됐다는 말이 나온 지 벌써 오래됐다. 스마트폰은 인간 세상의 모든 걸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미국 애플이 아이폰 음성 비서 ‘시리(Siri)’를 이용해 고객의 개인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집단소송을 당한 뒤 미국 소비자들에게 거액을 지급하기로 합의한 게 지난 연말의 일이다.

올 초 라스베이거스 트럼프 호텔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사건 조사 과정에서 테슬라의 사이버 트럭에 장착된 여러 대의 첨단 카메라가 결정적 역할을 한 사실이 대표적 사례다. 이를 통해 자동차 안도 더는 은밀한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주체가 딴마음을 먹을 경우, 첨단 자동차는 시민들에 대한 감시·통제의 수단으로 언제든 악용되고 변질될 수 있다.

그런데도 자동차는 점점 더 세상과 연결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차에 앉아 집 안의 전자기기와 조명 등을 제어하고, 집에 불이 나가면 차량의 전기를 활용하는 식이다. LG전자는 AI를 적용한 차량용 기술 ‘인캐빈 센싱’(In-Cabin sensing)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운전자와 차량 내부 공간을 AI로 연결해 외국어 교통 표지판의 실시간 번역 등 안전 운전을 돕고, 차량은 집처럼 편안한 휴식처,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독서나·영화를 즐길 수 있는 취미·취향 공간 등 다기능 공간으로 바뀐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AI는 보조 운전자 역할도 거뜬히 해낸다. 캐나다 기업 아이나고는 차량 내·외부와 운전자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위험 상황을 미리 알려주는 모빌리티용 AI 대화 도우미를 선보였고, 스웨덴 회사인 스마트아이AB는 차 안 영상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AI 솔루션을 내놨다.

자율주행 시대를 앞두고 운전자와 차량 간 소통과 정보 제공의 핵심 역할을 하는 디스플레이의 중요성도 갈수록 중요해지는 추세다. 삼성전자 자회사인 하만의 차량용 음성비서 ‘루나’는 운전자의 스트레스나 졸음 여부 등을 파악해 연달아 하품하거나 딴짓을 하기 시작하면 즉각 헤드업 디스플레이에 경고를 띄운다. 가장 가까운 졸음쉼터로 안내도 한다. 독일 자동차 부품 기업인 컨티넨탈은 운전석 앞에 설치 가능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를 공개했다. 탑승하기 전부터 운전자의 얼굴과 움직임의 특성을 분석해 문을 여닫거나 시동을 거는 등 다양한 동작을 자동으로 실행하는 고성능 생체 감지 기능을 적용했다. 주행 중에는 심박수·혈압을 분석한다.

AI가 이렇게 똑똑해질수록 요구 사항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이번 CES에서 전시한 AI 에이전트 탑재 전기차는 주차 지원이나 내비게이션 시스템 강화 차원에서 각종 위치 정보 수집은 기본이고, 마이크로 운전자의 음성 정보를 저장한다. 이를 통해 날씨·교통 등 필요한 정보 제공뿐만 아니라 음식 주문, 세탁, 레스토랑 예약 및 결제 같은 외부 서비스와도 연동하겠다는 구상이다.

전기차 제조사를 넘어 종합 에너지 기업을 꿈꾸는 테슬라는 완전자율주행(FSD) 시스템 고도화를 통해 모든 테슬라 차량이 스스로 움직여 승객을 실어 나르면서 소유자에게 수익을 제공하는 시대를 준비 중이다. 모든 자가용이 무인 ‘로보택시’로 변신하는 세상이다. 예약·결제는 물론 최적 경로 안내, 운전까지 물 흐르듯 연결하기 위해서도 더 많은 영상 데이터와 도로 정보 수집이 필수다.

이 과정에서 정보 유출 우려 또한 커진다. 정보·기술 패권을 놓고 경쟁 중인 미국과 중국이 안보를 이유로 커넥티드카의 수입과 기술 이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영상 데이터를 포함한 수집 정보의 오용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사생활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AI에 맞선 인류의 대응은 지극히 편협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관련 규정을 정비하거나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는 내용의 근본 처방은 외면한 채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거나, 일단 따가운 시선은 피하고 보자는 식의 대책을 내놓는다.

LG이노텍은 이번 CES에서 렌즈가 밖으로 노출되지 않고 대시보드 내부에 숨겨진 상태에서 촬영이 가능한 차량용 카메라를 선보였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세계 최초로 카메라를 디스플레이 중앙에 숨기는 언더패널카메라(UPC)를 전시했다. 카메라가 눈에 띄어 디자인을 해치거나, 계기판 위에 있어 운전대가 카메라 인식을 방해하는 기존 운전자 감시 시스템의 문제점을 개선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CES 2025가 개막한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베이 컨벤션센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해로운 짓을 하는 것은 인간이지, 기계는 기계일 뿐”이라고 말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인간이 기계를 가지고 장난을 칠 가능성과 그에 따른 위험성이 여전히 인류 앞에서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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