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영은 기자 = "이분은 텔레(텔레그램)로만 말씀하시니 알고 계세요", "의원님은 전화는 안 받습니다. 대신 오픈카톡방에서 주로 입장표명 하시니 참고하세요" 현장 선배들의 조언을 들으며 깨달았다. 취재원의 '퍼스트 랭귀지(first language)'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이제 기자의 필수 역량이 되었다는 것을.
지난 3개월간 특검 관련 인물들을 취재하며 흥미로운 현상을 목격했다. 공식 출석 현장이나 기자회견장에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피의자들이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 개인 메시지로는 놀랍도록 상세한 정보를 전달해 온다는 점이다. 카메라 앞에서는 '묵묵부답',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상투적인 말만 반복하던 이들도, 취재진이 물러간 후에는 자신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때로는 반박자료까지 보내왔다.

왜 공식적인 창구를 마다하고 비공식적인 우회로를 선택하는 것일까. 통제력의 차이다. 공적 공간에서의 발언은 되돌릴 수 없고, 맥락이 절단된 채로 전달될 위험이 크지만, 보는 눈이 많아 그 책임소재는 분명하다. 반면 카카오톡 등 메시지는 철회가 가능하고, 뉘앙스도 전할 수 있을뿐더러 '나를 숨겨달라'는 강력한 요구도 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취재원을 수다스럽게 만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본질을 이해하고 부드럽게 접근하는 역량이 기자의 새로운 역할이 됐다. 회견장에서처럼 다짜고짜 '본론'을 묻기보다는 취재원이 선호하는 소통 방식을 이해하고 그가 전달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세심하게 파악하는 자세가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먹는 취재'만 하던 선배는 텔레그램으로도 성실히 명함을 보낸 끝에 여러 단독을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진화 인류학 저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신체적으로 더 강인했던 네안데르탈인을 제치고 살아남은 호모사피엔스의 생존 비결이 '다정함'과 '친화력'이라고 분석한다. 힘과 기술이 좋지 않아도 다정함을 발휘해 더 큰 무리를 형성한 덕분이다.
기자가 SNS 연결망을 읽어내고 활용하는 능력도 진화의 결과일 수 있다. 취재원이 나를 만나주지 않고, 내 전화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낙담한다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들의 '퍼스트 랭귀지'가 어떤 플랫폼인지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그 일대일 채널에서 신뢰를 쌓아간다면,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듣고 나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