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를 뜻하는 영어 ‘피스(peace)’는 라틴어 ‘팍스(Pax)’가 어원이다. 팍스에 나라나 세력이 더해지면 ‘장기간의 안정·번영’ 체제가 된다. 기원전 27년부터 기원후 180년까지 로마의 최전성기인 ‘팍스 로마나’가 있었고, 19세기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팍스 브리타니카’ 시대를 구가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를 주도한 ‘팍스 아메리카나’를 시작했고, 1990년대 소련 붕괴로 확고해졌다. 한 세력이 압도적 힘으로 세계 질서를 주도하고 강제하는 ‘팍스의 시대’도 실상은 패권의 시대였다.
역사에 영원한 제국은 없듯 팍스 아메리카나도 쇠퇴하고 있다. 여전히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지만 미국 뜻대로 모든 게 좌지우지되는 시기가 아니다. 당장 중국의 부상과 맞서야 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주도로 8개국이 참여하는 경제안보협력체 ‘팍스 실리카(Pax Silica)’가 출범했다. 모래의 주성분인 규소(실리콘)의 산화물인 실리카는 반도체 핵심 소재다. 팍스 실리카는 반도체·인공지능(AI)·핵심 광물 등을 아우르는 공급망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기술동맹인 셈이다. 한국·일본·네덜란드는 기술력, 호주는 핵심 광물, 싱가포르는 물류 분야에 강점이 있다.
팍스 실리카는 중국 견제 목적이 뚜렷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약한 고리인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대응을 통해 중국의 기술굴기를 뿌리치고 미국 주도의 경제 질서를 구축하길 원한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 당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시도인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반도체) 동맹’을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중국은 지난달 캄보디아·미얀마·짐바브웨 등 19개 저개발국·개발도상국과 희토류 협력체를 구성했다. 미·중 간 공급망 블록화 경쟁이 본궤도에 오른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AI 3대 강국’을 내걸고 있다. 이를 위해선 핵심 광물 및 에너지 공급망 안정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팍스 실리카 참여가 불가피했을 수 있다. 하지만 미·중 전략 경쟁에서 한쪽 편에 선다는 것은 도전적 과제이고, 한·중관계의 미래도 능동적으로 살펴야 한다. 팍스 실리카의 미래가 어떨지,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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