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나 월세 계약이 끝났는데도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임차인이 가장 먼저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임차권등기명령 신청이다. 이 등기를 해두면 이사를 가도 대항력을 유지할 수 있어서 보증금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임차권등기를 신청하는 데 드는 돈이다. 보통 법무사 비용이나 서류 준비 비용 등으로 수십만 원이 들기도 하는데, 지금까지는 이 돈을 돌려받기가 쉽지 않다. 집주인에게 따로 달라고 하거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2020년 5월, 유임대는 나임차에게 보증금 2천만 원, 월세 50만 원 조건으로 아파트를 빌려주었다. 계약은 2년 뒤인 2022년 5월까지. 그러나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전, 두 사람은 다시 협상을 했다. 보증금은 2,500만 원으로 올리고, 계약기간은 2024년 5월까지 늘렸다. 대신, ‘월세를 3개월 이상 밀리면 계약을 해지한다’는 특약이 붙었다.
그해 5월, 나임차의 사정은 급격히 어려워졌다. 결국 월세를 내지 못한 채 세 달이 흘렀고, 유임대는 특약을 근거로 2022년 8월 계약을 해지했다. 동시에 나임차를 상대로 집을 비워 달라는 소송과 미납 월세 상당의 부당이득 반환 청구를 제기했다.
나임차는 계약이 끝났음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자,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했다. 이로써 2022년 10월, 해당 아파트에 임차권등기가 완료됐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변호사비 80만 원, 등기 설정 비용 15만 3천 원, 총 95만 3천 원이 나임차의 주머니에서 나갔다.
⚖ 소송의 쟁점은?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유임대가 나임차에게 월세 상당 부당이득, 미납 공과금, 원상회복비를 청구하자, 나임차는 “그럼 내가 쓴 임차권등기 비용을 상계하자”고 주장한 것. 유임대는 단호했다. “그건 민사소송법상 소송비용 확정절차를 거쳐야 돌려받을 수 있는 거지, 이렇게 바로 상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1심과 2심도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달랐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 제8항은 임차권 등기 비용 상환청구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그 방법이나 절차를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따라서 임차인은 민사소송을 제기하거나, 상계의 자동채권으로 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청구할 수 있다.”
결국 원심은 파기되고, 사건은 다시 하급심으로 내려갔다(대법원 2025. 4. 24. 선고 2024다221455 판결).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그동안 임차권등기 비용은 수십만 원에 불과한 경우가 많아, 별도 청구를 하다 더 큰 분쟁으로 이어지는 일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나임차처럼 임대차 분쟁에서 상계를 통해 실질적으로 돌려받는 길이 열렸다. 앞으로 임차권등기 비용이 ‘그냥 넘어가는 돈’이 아니라, 분쟁 속에서 당당히 청구할 수 있는 권리임이 명확해진 것.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다음과 같다. 복잡한 소송 절차 없이 보증금에서 임차권등기 비용을 바로 빼고 받을 수 있게 되어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다. 또한 임차인의 권리가 더 강해졌다. 임차권등기 비용을 ‘개인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돈’이 아닌, 집주인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제 집주인이 보증금을 제때 주지 않아 임차권등기를 해야 한다면, 그 비용도 보증금에서 빼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 임차인의 권리를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박상홍 변호사 한 줄 정리!
임차권등기명령에 쓴 돈, 꼭 복잡한 절차(소송비용 확정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임대인에게 받을 수 있다. 또한 법원에 따로 소송을 하거나, 임대인이 청구한 돈에서 빼는(상계) 방식 둘 다 가능
박상홍 변호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현 법무법인(유) 로고스 변호사·변리사(가사/상속/신탁팀 소속). 서적 <2024 북한인권백서> <금융피해 법률지원 매뉴얼> <가정법원 너머의 이혼상속 상담일지>를 공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