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아래로 봤지만, 청년들 '일본이 뒤쳐졌다' 말해"

2025-03-24

일본 한반도 권위자의 한·일 60주년 진단

"2025년은 8·15 광복 80주년의 해이자,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의 해다. 1945년과 1965년은 한·일 관계에서 기념비적인 연도다. 일제의 식민 지배가 끝나고 양국 관계 정상화까지는 20년의 세월이 걸렸다. 양국 지도자의 결단으로 다시 손잡은 지 6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일 관계에는 비도 오고 바람도 불었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한·일은 이제 2065년 양국 관계 100주년을 내다보며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 우의를 다지고, 미래를 함께 도모해야 할 시점이다. 일본 나고야(名古屋) 난잔(南山)대학에서 아시아·태평양센터장으로 일하는 히라이와 슌지(平岩俊司·65) 교수가 마침 서울을 방문했다. 도쿄 외국어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게이오(慶應)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주중 일본대사관 전문 조사원, 국가안전보장국(NSS)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특히 2015년 8월 14일 발표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 관련 전문가 회의에 참여한 경험도 있다.

광복 80년, 국교 정상화 60년

이젠 대등한 한·일 관계 가능

과거사 문제 충분히 부응 못해

관계 개선 윤 대통령 긍정 평가

이시바 총리, 80주년 담화 의향

일본, 한국 진보와 화해가 숙제

전후 100년까지 모두 조심하고

오사카박람회·APEC 활용해야

-얼마나 자주 방한하나.

"윤석열 정부 들어 한·일 관계가 개선되면서 지난해에는 10차례나 방한했다. 올해는 이번이 처음이다. 고령의 기성세대는 한·일의 위상에 대해 일본 측은 위로부터 내려다보는 시선이 있고, 한국 측은 일본이 여유가 있으니 양보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일본 학생들이 한국을 다녀가면서 '한국은 선진국인데 일본은 뒤처지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우리 세대는 한·일이 대등해졌다고 보는데, 일본의 젊은 세대는 한국을 선진국으로 본다. 실제로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이 일본보다 많아졌다. 진정한 의미에서 대등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젊은 세대에게 기대하고 싶다."

"일본의 과거사 노력 C학점은 돼"

-일본은 윤 대통령을 어떻게 보나.

"윤 대통령이 (2023년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을 협력 파트너로 부른 것을 계기로) 역대 최악이던 한·일 관계를 긍정적으로 회복했다고 평가한다. 그에 부응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당시 총리도 평가할 만하다. 특히 윤 대통령의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자세는 일본 측이 매우 높게 평가할 만하다. 단순히 한·일 관계뿐 아니라 한·미·일 3국 정상의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 합의에서 보듯이 윤석열 정부는 한반도에 한정하지 않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을 협력 파트너로 인식했다."

-당시 박진 외교부 장관은 '한국이 물잔의 반을 먼저 채우면 나머지를 일본이 채울 것'이라 기대했는데.

"과거사 문제에서는 일본이 충분히 부응하지 못했다. 역사 문제는 해결이 어렵고 국내 정치적으로 한계도 있다. 한·일 관계 개선으로 한·미·일의 대북 미사일 정보 교류가 가능해진 것은 무엇보다 높게 평가하고 싶다. 일본 젊은 세대가 한국을 좋아하고 많이 방문하는 것은 아주 긍정적인 변화다. 일본이 물잔의 30%는 채웠으니 100점 기준으로 보면 60점이다. A, B 학점은 아니지만 C 학점은 된다. 한국 측은 부족하다고 느끼겠지만, 앞으로 더 채워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일 관계는 기대만큼 정상화됐나.

"문재인 정부 시절을 50점이라고 본다면 지금은 80점 이상이라 평가할 수 있다. 한국 국내적으로 한·일 관계에 대해 온도 차이가 느껴진다. 예를 들면 보수 진영은 한·일 관계를 긍정적으로 보지만, 진보 진영은 일본에 대해 뭔가 다른 입장이 있어 보인다. 한국의 보수 진영과는 관계가 정상화됐는데 진보 진영과는 아직 못했다. 그래서 숙제가 남아 있다는 인식이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 한·일 관계 최악"

-한·일 관계사에서 역대 최악 시기는.

"학계 원로인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이승만 시대보다 최악은 아니다'라고 평가했지만, 여러모로 문재인 정부 시절이 최악이라 본다. 정치인들의 생각과 무관하게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한·일 관계에서 안보·경제·인적교류는 절대로 흔들지 말아야 하는 기반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문재인 정부 시절에 3대 기반이 모두 흔들렸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 당시 한국 측이 일본 해상 자위대 초계기에 레이더를 쐈고,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수출 절차 우대 대상국)'에서 제외했고, 양국 학생들의 방문이 급감했다."

-돌아보면 한·일 관계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건을 꼽으면.

"긍정적인 사건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1987년 한국의 민주화, 1998년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선언이다. 1945년 이후 80년을 생각하면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도 중요한 사건이다. 한·일 관계에 나쁜 기억으로 일본에서는 '이승만 라인(Rhee Line)'을 거론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를 보면서 일본인들은 무섭다는 반응을 보였다."

항일 독립운동을 이끈 이승만 대통령이 1952년 1월 18일 독도를 대한민국 영토로 포함하는 '인접 해양 주권 선언'을 국무원 고시로 발표했다. 일본이 "영토 침략"이라며 항의했지만, 이 대통령은 무시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회담은 미국의 압력으로 1951년부터 1965년까지 14년 동안 7차례 열렸으나 반일 감정이 강했던 이승만 정부 시절에는 결실을 보지 못했다.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우선시한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으로 1965년 6월 22일 수교 협상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 좌파는 이승만·박정희를 친일파라 비난한다.

"일본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다만 이승만 라인 선언 때문에 관계 정상화가 늦어졌다는 인식이 있다. 박정희는 이념보다는 합리적·실용적으로 접근해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해 한국의 이익에 도움을 줬다고 본다. 당시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용기 있는 지도자들이 각오하고 결심했기에 양국 관계 정상화가 가능했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경제협력 방식이 맞느냐, 배상방식으로 해야 옳았다는 주장이 있지만, 당시 아시아에서 미국 중심으로 한·일이 함께하는 안보 협력은 절실했다."

"이시바, 미래 지향적 메시지 낼듯"

2015년 8월 당시 아베 총리는 전후 70주년 담화에서 “일본은 반복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과의 기분을 표명해왔다. 그런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담화문에 침략, 식민 지배, 사죄, 반성이라는 단어를 넣기는 했지만, 간접 화법을 사용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가 올해 담화를 내놓을지 그래서 주목된다.

-이시바 총리가 특별담화를 낼까.

"한·일 60주년도 중요하지만, 일본 입장에서 올해는 전후 80주년이라 이시바 총리는 전후 80주년 담화를 내고 싶어한다. 한국 측은 여러 불만이 있겠지만, 일본은 아베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에서 전쟁 이전을 포함한 역사에 대해 정리했다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80주년 담화를 낸다면 앞으로 일본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일본이 아시아와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해나갈지 등 미래 지향적 메시지를 중심으로 낼 것으로 예상한다."

"일본은 겸손이, 한국은 아량이 필요"

-과거사를 언급하며 사과할까.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 미래를 생각하자는 메시지는 담을 것 같다. 다만 과거사에 대해서는 아베 총리의 70주년 담화에서 더 나가거나 수정하는 것은 일본 국내적으로 몹시 어렵다. 과거 일본 총리의 사과 수준을 넘는 사과는 어려울 것이다. 1931년 만주사변도 침략으로 인정하지 않는 정치인이 있는데 이시바는 아베만큼 영향력이 강하지 않다. 일본 국력도 2010년 중국에, 지난해 독일에 역전당해 세계 4위로 약해졌다. 이런 여러 현실 때문에 한국 측이 만족할 만한 인상적인 담화가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일 관계 미래를 위해 조언한다면.

"일본 방위대학장과 '한일포럼' 일본 측 대표를 역임한 이오키베 마코토(五百旗頭眞) 고베대학 명예교수는 생전에 '국가 간의 기억은 폐를 끼친 측이 50년을 잊지 않는다면, 당한 측은 100년을 기억한다. 그래서 전후 50년부터 100년까지가 매우 위험하니 한·일 양측 모두 주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극히 옳은 말씀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은 2차 대전 종전 80주년에 해당하니 지금이 바로 위험한 전후 50~100년에 속한다. 일본은 과거 행위에 대해 미안하다는 마음을 갖고 겸손해야 하고, 한국은 일본에 아량을 베풀며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올해는 미래의 한·일 관계를 바라봐야 하는 매우 중요한 때다."

오는 5월에는 오사카 박람회가 열리고, 6월 22일은 국교정상화 60주년이다. 8·15 광복절에 이어 10월에는 경주에서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 슌지 교수는 "이런 행사들을 잘 활용해 '세단 뛰기(홉·스텝·점프)'로 한·일 관계를 다음 차원으로 끌어올릴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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