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민심을 두려워해야 한다

2024-11-14

1980년대 민주화를 이끌던 대학가의 대자보와 시국성명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비판 내용은 민주주의 붕괴, 법치주의 훼손, 몰락하는 경제, 권력사유화, 역사퇴행, 불공정과 비상식, 전쟁위기 등 국가 전체 차원에서부터 김건희 여사의 국정농단,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품 수수, 국회법안 거부, 검찰권력 사적 이용, 채 상병 사망사건, 뉴라이트 인사, 이태원 참사, 공천개입 등 구체적인 사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국가권력의 모든 부패상을 보는 것 같다. 지성사회가 일어섰다는 것은 국가위기의 징후를 탐지했다는 신호다. 사태의 원인은 민주주의의 결함에도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현 대통령의 능력과 자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핵심은 도덕성이다. 왕조국가 조선이 무려 500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조상들이 강조한 수기치인(修己治人)과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전통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리론(主理論)을 편 이황은 기대승과의 사단칠정 논쟁에서 이기불상잡(理氣不相雜)의 논리로 인간의 본성은 순수하고 잡됨이 없다고 보았다. 천리를 보존하는 수양을 통한 내면의 도덕성 확립으로 사회질서를 바로 세우고자 했다. 주기론(主氣論)에 선 이이가 성혼과의 논쟁에서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주장한 것은 사람의 기질은 순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규범과 제도로써 도심과 덕이 우위에 서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성리학의 가르침엔 참된 이치와 도리를 부여한 하늘에 대한 공경심이 선행한다. <도덕경>과 <명심보감>에서 “하늘의 그물은 크고 성긴 것 같지만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고 한 가르침이 잘 보여준다. 하늘을 신, 조물주, 법신, 하늘님 등 뭐라 해도 좋다. 우리가 아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주관적 신념이나 믿음으로 진실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근대는 이러한 절대적 세계관이 무너진 시대다. 유럽에선 세속 정치를 좌우했던 신의 권위가 무너진 자리를 국가권력이 차지했다. 카를 슈미트가 “현대 국가론의 중요 개념은 모두 세속화된 신학 개념이다”(<정치신학>, 김향 옮김)라고 한 뜻이 여기에 있다. 국가권력은 신과의 투쟁에서 마침내 승리하고 신이 되었다.

기나긴 중세 유럽의 암흑기를 초래한 종교에 대한 반동은 필연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변함없는 북극성과 같은 나침반을 필요로 한다. 프랑스 혁명기를 배경으로 한 <레미제라블>에서 그 일단을 읽을 수 있다. 죽을 처지에서 장발장이 살려준 형사 자베르는 국가법이 해결할 수 없는 세계가 있음을 알고 자살하게 된다. ‘신성불가침의 국법이 있는데 어떻게 악인이 선한 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품었으리라. 빅토르 위고는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제정을 선언하자 10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하면서 국가권력의 한계를 고민하며 이 소설을 썼을 것이다. 장발장과 자베르의 역할은 종교와 국가의 화해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국가의 형태는 유럽에서 형성된 국가론을 따르고 있다. 대통령제 또한 미국이 세계 최초로 창안하여 전 세계로 파급되었다. 인류 문명은 몇몇 지도자들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는가에 따라 각 나라의 희비는 엇갈린다. 미완의 근대국가 기획으로 세계는 질서보다는 무질서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신정국가와 마찬가지로 대다수 나라의 최고 권력자는 임기 동안 그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신적 권위를 독점한다. 일시적임에도 권력자들은 하늘에 대한 외경의 마음을 갖기는커녕 스스로 지상의 신처럼 군림한다.

신이 된 권력자들은 그 권력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한다. 권력은 지나고 나면 꿈과도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하루빨리 미몽에서 벗어나 위민(爲民)과 애민(愛民)의 지도자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모든 잘못을 밝히고 백성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들어야 한다. 권력이 국가와 국민, 자신을 살리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8년 전 촛불혁명의 불길이 다시 타올라 백성들 스스로 그 권력을 회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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