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게이트’ 수사 착수·전쟁 책임 지적 등
네타냐후와 줄곧 대립···‘극우 친정 체제’ 심화

가자지구 전쟁 국면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대립해오다 해임돼 법적 다툼을 벌였던 이스라엘 국내 정보기관 신베트의 로넨 바르 국장이 결국 “모두 책임지겠다”며 공식 사의를 표명했다. 이스라엘의 전쟁 수행 방식 등에 있어 쓴소리를 내온 인사들을 줄줄이 내치고 극우 충성파만 주변에 남겨온 네타냐후 총리의 친정 체제가 강화되는 형국이다.
28일(현지시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바르 국장은 이날 신베트 본부에서 열린 순직자 추도식에서 2023년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막지 못한 일을 두고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이 모든 일에 책임을 지겠다”며 “임기를 마치겠다”고 밝혔다.
바르 국장은 “우리는 모두 공직을 맡아 국가 안보 수호를 일생의 사명으로 삼았지만, 그날 보호막을 제공하지 못했다”면서 “살해된 이들과 전사자, 부상자, 납치된 이들과 그 가족 앞에 겸허하게 머리를 숙여야만 한다”고 말했다.
하마스 공격을 막지 못한 안보 실패를 인정하며 이에 책임을 지고 상의한 이스라엘 고위급 인사는 헤르지 할레비 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에 이어 바르 국장이 두 번째다. 반면 정부의 총책임자인 네타냐후 총리는 안보 실패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적도, 이에 대해 사과한 적도 없다.
바르 국장은 이날 추도식에서 “신베트는 국가 안보와 이스라엘의 민주주의에 매우 중요한 조직”이라며 “나는 지난 한 달간 이를 위해 싸웠으며, 고등법원에 이에 필요한 토대가 마련됐다”며 자신의 해임을 둘러싼 논란을 언급했다. 이어 “신베트가 장기적으로 두려움 없이 남아있을 수 있도록 보장해줄 수 있는 판결을 고등법원이 내려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바르 국장은 오는 6월15일자로 직을 내려놓겠다며 “내가 공직에서 내린 결정은 조국에 대한 사랑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 기반했으며, 오늘 저녁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최근 바르 국장은 내각의 해임 방침을 둘러싼 법정 다툼이 조직에 부담을 준다고 우려하며 주변에 사퇴 의사를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바르 국장은 가자지구 전쟁 국면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자극하는 극우파 각료의 행동를 비판하는 등 네타냐후 총리와 대립해 왔고,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달 16일 “신뢰를 잃었다”며 바르 국장을 해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이스라엘 내각은 지난달 20일 회의에서 바르 국장 해임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이스라엘 건국 이래 정보기관 수장이 임기 중 해임되는 것은 처음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해임 이유로 신뢰 부족을 들었으나, 이스라엘 정치권과 현지 언론들은 신베트가 최근 네타냐후 총리 측근이 연루된 ‘카타르 게이트’ 수사에 착수하고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정부 책임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발표한 데 주목했다.
카타르 게이트로 신베트의 수사망에 오른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에게 비판적이거나 반기를 든 인사를 줄줄이 몰아내고 친정 체제를 강화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바르 국장 역시 신베트가 수행 중인 “민감한 조사”를 마무리하고 인질 석방 협상을 위한 후임자가 준비될 때까지 물러날 생각이 없다고 버티며 네타냐후 총리가 국가 공공 이익과 무관한 “개인적 충성”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내각 결정 이튿날 야당과 시민단체는 바르 국장 해임 철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지난 8일 고등법원은 내각이 해임 절차에 이견을 가진 검찰총장실과 타협해 20일까지 타협안을 도출하라고 명령했으나 일주일이 넘도록 해결책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다만 바르 국장이 자진 사퇴하며 해임을 둘러싼 소송도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