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대란 연상시키는 유심 해킹

2025-05-06

출국을 앞두고 인천국제공항에서 휴대전화 유심(USIM·가입자 인증 모듈) 교체 서비스를 받으려고 시민들이 길게 줄 서 있는 모습은 코로나19 공포가 온 나라를 휩쓸던 2020년 봄 마스크 대란을 떠올리게 한다. 그해 3월 마스크 품귀 현상으로 생년월일의 끝자리 숫자에 맞춰 요일별로 약국에서 공공 마스크를 사야만 했다. 마스크를 살 수 있던 첫날 “걱정마라. 몇 개 구해 오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집을 나섰다가 약국 문에 붙은 ‘오늘 판매 종료’란 문구만 보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다음 기회가 왔을 땐 아침부터 서둘러 약국으로 가 마스크 사는 데 성공했다. 공급 물량 부족, 불안이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2500만 명 가입, 전 국민적 피해

대응 부실하고 공급 물량 태부족

정부, 칩 교체·품질 검증 나서야

SK텔레콤의 유심 해킹 사고가 발생한 지 보름이 넘어간다. 유심 대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유심 교체를 위해 휴대전화 매장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고, 해외여행에 신나 있어야 할 공항에서 길게 줄을 서 있어야 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기다린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가입자 유심 교체 안내도 부실하다.

연휴 기간 휴대전화 대리점 몇 곳을 돌아봤더니 ‘유심 교체 예약 안내’ 문구를 붙여 놓은 곳은 SKT 공식 대리점뿐이다. 대형마트의 휴대전화 코너나 KT·LG유플러스를 같이 취급하는 매장에는 안내문조차 붙어 있지 않다. ‘이미 유심 교체를 예약한 고객님이 많이 계셔서 즉각적인 유심교체가 어렵습니다…예약해 주시면, 유심 재고가 입고 되는 대로 교체 가능한 일자를 문자로 안내드리겠습니다’라고 쓰인 안내문도 말은 점잖지만, 그냥 연락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거다.

SK텔레콤은 가입자가 2500만 명(알뜰폰 포함)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이동통신업체다. 가족을 포함하면 사실상 전 국민이 피해 대상자다. 유심은 이동통신 네트워크에서 단말기 사용자를 식별·인증하는 역할을 한다. 연락처 등 사용자 저장 정보, 결제·부가서비스 기능 등에 필요한 정보를 저장한다. 이런 유심 정보가 해킹당했다 하니 금융 사기, 명의도용 등의 2차 피해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회사 측은 “해킹 이후 불법적 유심 복제 피해는 파악된 것이 없다”고 하지만 안심이 되질 않는다.

SK텔레콤의 사고 대응은 부실하고 유심칩 부족, 서비스처리 지연으로 불만은 높아지고 있다. 네이버엔 ‘SK텔레콤 개인정보유출 집단소송 카페’가 만들어졌고, 회사는 유심 정보유출과 관련해 형사고발을 당했다. 정부는 어떤가. SK텔레콤이 잘못했다고 막대한 과징금 부과 등을 예고하며 혼을 내고는 있다.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2500만 가입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는 부족하다.

유심복제 방지를 위한 대책으로 유심보호서비스 가입, 유심 교체, 이심(eSIM·소프트웨어형 유심)교체, 통신사 변경 등이 거론되는데 그중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유심 교체가 꼽힌다. 하지만 가입자가 원하는 수준으로 유심칩을 교체하기에는 물량부터 턱없이 부족하다. 마스크 대란 때 마스크 생산·공급과 품질이 문제가 됐었다. 지금 부랴부랴 유심칩 생산·공급에 나서고 있다. 불량품은 없을까, 제때 공급은 될까 걱정이 앞선다. 업체에만 맡겨두지 말고 마스크 생산과 품질을 점검했던 것처럼 신속한 교체와 안정성 확보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노약자·장애인 등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

2023년의 LG유플러스 고객정보 유출 등 매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상당하다. SK텔레콤 유심 해킹이 워낙 커서 주목을 덜 받고 있지만, 최근 구인·구직 플랫폼인 알바몬에서는 해킹으로 2만2000여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 신고는 2021년 163건에서 2023년 318건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에 우선 필요한 정책으로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공히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기술개발 및 보급의 촉진(각 66.1%, 34.3%)’이 꼽힌다(2024 개인정보연차보고서). 우리 통신기업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투자는 미흡하다. 지난해 매출이 연결기준 17조9000억원에 달하는 SK텔레콤의 정보보호 투자액이 867억원에 불과하다.

개인정보를 해외로 넘긴다며 중국의 딥시크를 비난한 게 불과 석 달 전인데 지금 우리 기업은 가지고 있는 개인정보를 무더기로 해킹당하고 있다. 철저한 조사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제품·서비스 개발 단계부터 개인정보를 중심으로 설계하고, 이름 뿐인 개인정보보호책임자의 역할도 강화해야 한다. 튼튼하고 안전한 나라는 국방과 치안만이 아니다. 네트워크 세상에서는 내 휴대전화가 안전해야 튼튼하고 안전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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