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이 리베이트를 통한 조세포탈 의혹을 받는 DL그룹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DL그룹 계열사들이 용역 계약 과정에서 지급한 웃돈이 그룹의 비자금으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자금 흐름을 추적 중이다. 또 이해욱 DL그룹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가 이 과정에 개입했는지, 배임·횡령 등 혐의가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이진용 부장검사)는 최근 국세청이 DL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조세포탈 혐의를 고발한 사건을 배당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앞서 국세청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약 8개월간 DL이앤씨(옛 대림산업), 그룹 지주사 DL의 대주주인 대림, 핵심 계열사인 DL케미칼과 DL케미칼·한화솔루션 합작사인 여천NCC 등을 대상으로 특별 세무조사와 조세범칙조사를 실시했다. 국세청은 조사 과정에서 DL그룹 계열사들이 용역 계약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리베이트를 지급해 세금을 탈루한 정황을 포착해 검찰에 고발했다.
리베이트란 기업이 상품이나 용역을 판매하면서 대금의 일부를 구매자 측에 뒷돈 형태로 돌려주는 불법행위로 시장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건설업계에서는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시행사 임직원 가족이나 발주처 관계자에게 허위 급여를 지급하거나 이들의 명의로 설립한 유령회사에 허위 용역비를 지급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방식이 흔하게 이용된다. 이런 방식의 리베이트는 건설 원가를 인위적으로 높여 결과적으로 품질 저하와 분양가 상승을 유발하고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검찰은 DL그룹이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수사가 DL그룹 지주사와 핵심 계열사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오너 일가를 겨냥한 전방위적 수사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과거에도 기업의 조세포탈 혐의가 최고경영자(CEO)나 사주 일가의 비자금 수사로 이어진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대표적으로 국세청은 2013년 5월 효성그룹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실시한 뒤 같은 해 9월 조석래 전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고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수사를 거쳐 2014년 1월 조 전 회장을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효성그룹은 이후인 2019년 추가 세무조사에서도 1522억 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았다.
DL그룹은 2019년 계열사 간 합병 과정에서 편법 승계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DL그룹의 핵심 계열사였던 대림코퍼레이션(현 대림)의 지분 구조는 이준용 DL그룹 명예회장이 61%, 그의 아들 이 회장이 32%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이 회장은 아버지인 이준용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승계받기 위해 지분을 늘리는 과정에서 막대한 증여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자신이 지분 100%를 가진 대림아이앤스를 대림코퍼레이션과 합병하면서 세금 부담 없이 지분율을 52.3%로 높여 최대주주에 올랐다. 국세청은 이를 편법적 경영권 승계로 보고 특별 세무조사를 벌인 바 있다. 이후 DL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이해욱 회장→대림(옛 대림코퍼레이션)→DL→DL이앤씨·DL케미칼·DL에너지’로 이어지는 현재의 지배구조를 갖추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