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영화는 평범한 남성이 욕조에 앉아 추상적인 문장이 가득한 책을 읽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궁금증을 보이는 딸이 다가오지만 피우던 담배는 내려놓지 않습니다. 아이 앞에서 담배라니, 지금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유념해둬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1965년에 개봉했고, 당시로서도 기존 영화의 규격을 정면으로 반하는 영화였다는 점입니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주인공 ‘페르디낭’(장 폴 벨몽도)은 딸과 아내가 있는 유부남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딸을 돌봐주기 위해 찾아온 베이비시터 ‘마리안’(안나 카리나)과 사랑에 빠져버립니다. 지루하고 공허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그들은 갑작스레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돈 한 푼 없이 도피를 위한 로드트립을 떠납니다. 페르디낭과 마리안은 차를 끌고 무작정 남프랑스로 향합니다. 니스로 가면, 혹은 더 아래로 가면 범죄에서도 자신들을 옭아매는 부자유에서도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어두운 밤을 가르는 자동차 속 대화에서 이들의 치정극이 시작됩니다.
여정은 순탄치 않습니다. 경비가 부족해 차에 기름 넣을 돈도 없었던 그들은 주유소 직원을 폭행하고 ‘무전 주유’한 뒤 도망칩니다. 잠시 후에는 차를 버리고 떠나야 한다며 멀쩡하던 차에 불을 지릅니다. 낭만적인 대사로 가득 찬 로드트립이지만 그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계속 죽어갑니다. 마치 마네킹에 케첩을 뿌려둔 듯 인위적으로 누워있는 시신들은 이 여정에서 살인은 별것 아니라는 메시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미치광이 피에로>라는 제목과 달리 영화에 피에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리안은 한결같이 페르디낭을 향해 “피에로”라고 부르고 페르디낭은 “나는 페르디낭이야”라고 답할 뿐입니다. 이처럼 사랑을 위해 떠난 여정이지만 소통은 잘 이뤄지지 않습니다. 페르디낭은 늘 이성적으로 사유하고 기록하는 시인 같은 인물이고 마리안은 생각보다 감각이 우선인 행동파 인물이기 때문이죠. 두 사람의 갈등이 극에 달하는 극 후반은 이해가 가다가도 약간은 황당무계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사실 내용을 설명하는 게 큰 의미가 없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장뤼크 고다르’의 스타일과 ‘누벨바그’라는 역사 때문이죠. 누벨바그는 ‘새로운 물결’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로 1960년대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종의 영화 운동을 뜻합니다. 거친 촬영, 내용적 맥락 삭제, 야외촬영, 제4의 벽 깨기, 열린 서사구조 등이 특징입니다. 한마디로 ‘기존 영화와는 다른 뭔가를 만들겠다’는 도전 의식이 담긴 영화라는 것이지요. <미치광이 피에로>는 누벨바그 영화의 정점으로 꼽히는 작품이고 ‘영화사는 고다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대표적으로 영화감독 쿠엔티 타란티노가 고다르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영화광들이 사랑하는 작품이니만큼 접근하기 어려워 보이는 작품이고, 실제로 영화 속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들면 꽤 심란해지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모호한 내러티브는 오히려 내가 원하는 대로 해석하는 게 답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고다르 감독도 <미치광이 피에로>에 대해 “영화가 아닌 하나의 실험이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영화이니 이렇게 봐야 한다’는 기준을 잠시 내려두고 장면이나 대사가 주는 느낌을 감상한다면 생각보다 웃긴 영화라고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나 아쉬운 점은 찍은 지 60년이 지난 영화인만큼 음향이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배경 소리와 목소리가 뒤섞여 잘 들리지 않거나, 소리가 아니라 소음으로 다가오는 장면도 있죠. 하지만 스크린에 담기는 화면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소품들의 색감과 구도가 눈에 띄는 것은 물론이고, 오픈카를 타고 남프랑스로 향하는 로드트립은 늘 자연경관이 함께합니다. 자유를 찾아 산과 바다를 헤매는 그들을 함께 여행하는 기분으로 지켜보면 어떨까요.
<미치광이 피에로>는 이달 개봉 60주년을 맞아 다른 누벨바그 명작들과 함께 아트하우스에 재개봉했습니다. 큰 화면으로 고전 명작에 빠져보고 싶다면 영화관에서, 가볍게 누벨바그의 맛을 보고 싶다면 OTT로 즐길 수 있습니다. 현재 왓챠에서 서비스 중입니다.
고전명작지수 ★★★★★ : 개봉한 지 60년이 된 영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화면. 누벨바그의 대표주자를 만나고 싶다면 추천합니다.
씨네필지수 ★★★★★ : 그러나 씨네필이 아닌 사람에게 함부로 추천했다가는 미움받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