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구 박사의 맛있는 인천 섬 이야기] ㉝홍어 주산지, 대청도

2024-11-17

홍어(Raja Kenojei)는 전남 흑산도를 대표하는 어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530년에 편찬된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9권에 따르면 인천 도호부의 토산물로 홍어가 언급된 바 있다. 이를 보면 서해안 전역에서 홍어가 보편적인 어종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홍어는 우리나라 인천, 목포, 영광, 부산 등지에서 많이 서식하며, 일본 아오모리현 이남 해역과 동중국해에도 분포한다. 홍어는 수심 30∼200m, 수온 5∼15℃에서 서식하는 냉수성 어종이다.

주로 젓새우류, 오징어류, 게류, 갯가제류 등을 먹이로 삼는다. 1990년 이전까지는 가오리류(Rays)에 홍어류(Skate)가 포함돼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1991년부터 가오리류와 홍어류를 구분하기 시작했고, 2010년 이후 참홍어를 별도로 구분했다.

대청도는 예로부터 홍어잡이로 유명했다.

대청도 주민들은 잡은 홍어를 그대로 저장해 삭히거나 해안가에서 내장을 제거한 후 가마니에 깔고 자갈로 덮어 삭힌 후 군산이나 영광 법성포로 운반해 쌀이나 부식품과 교환했다고 전해진다.

홍어잡이 방식은 낚시에 노래미를 미끼로 사용해 바다에 놓고 반나절 후 걷어 올리는 장주낙 방식이었다.

1966년경 외지인이 미끼 없이 빈 바늘만으로 홍어를 잡는 건주낙 방식을 도입하면서 대청도 홍어잡이는 혁신이 일어났다. 건주낙은 일본에서 가오리를 잡는 방식으로, 한국에 전해졌다고 한다.

대청도에서 건주낙 방식의 홍어잡이가 활성화되면서 북방한계선(NLL) 근처까지 올라가 조업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해에서 납북어선이 증가하자 정부는 어로 저지선을 세 차례에 걸쳐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특히 1974년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하던 수원 32호는 격침됐고, 수원 33호는 납북되어 조업이 어려워지자 대청도에 살던 송명섭 씨는 1975년, 김상렬 씨는 1984년에 각각 전남 흑산도로 이주했다.

김상렬 씨는 “어로 저지선이 남하함에 따라 정부의 단속이 강화됐지. 이에 대청도 사람들은 흑산도로 이주해 홍어잡이를 시작했고, 1984년에는 6척의 배를 이끌고 흑산도로 이주했지. 흑산도에서는 낮과 밤 구분 없이 24시간 조업할 수 있고 간섭이 없었어. 당시 흑산도 주민들은 장주낙 방식으로 홍어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와 조업 방식에 큰 차이가 있었어. 그들은 건주낙 방식의 기술 도입을 받기 위해 우리에게 막걸리를 많이 대접했지”라고 전했다.

대청도 사람들이 전해준 건주낙 방식 때문에, 1980년 전후 흑산도 홍어잡이는 풍어를 맞이했다.

2000년부터 2022년까지의 인천과 전남 홍어 생산량을 보면 2018년까지는 인천의 홍어 생산량이 전남을 앞서고 있다. 그러나 2019년 이후부터 전남의 홍어 생산량이 급증하며 인천을 앞지르고 있다.

2021년 9월 3일, 대청도 건주낙 방식으로 어업을 하는 전남 신안군 흑산도 연근해 어장 주변(6901.4㎢)이 국가 중요 어업 유산 제11호로 지정됐다.

시장경제 발달로 생산지와 소비지가 분리되는 경우가 많지만 대청도를 방문하면 생산지에서 싱싱한 홍어회와 홍어탕을 맛볼 수 있다.

인천이나 수도권 지역 사람들은 삭힌 홍어보다는 생으로 즐겨 먹는다.

대청도는 자연산 다시마와 미역이 유명하다. 덜 삭힌 대청도 홍어와 다시마 및 미역을 세트로 구성해 수도권에 판매하면 좋은 상품이 될 것이다.

아울러 홍어찜도 좋고, 홍어탕에 묵은지를 넣어 끓이는 홍어 묵은지탕은 맛이 좋아 인천 특산물로 특화하면 좋을 것 같다.

글 : 김용구 박사(인천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인천시 섬발전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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