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불법 체류자 단속을 대부분 돌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대규모 투자에 대한 부당 대응으로도 느끼는 듯하다. 과연 그렇기만 할까.
전조는 넘쳤다. 미주중앙일보가 애틀랜타 공항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의 전자여행허가(ESTA) 입국이 거부되고 있다고 쓴 게 지난해 10월이다. 40대 남성이 3주간 남부 관광을 하겠다고 했지만 '지인의 집'이 현대차 노동자들의 민박촌인 게 의심을 샀다는 것이다. 기사엔 현지 변호사의 우려 섞인 조언도 담겼다. “한국 기업과 만난 첫날부터 취업비자에 대한 설교를 늘어놓게 된다. 업무 회의를 하는 건 문제 되지 않지만 기술적 엔지니어링 일을 시작하는 순간 불법이다. 공장 안에 허가받지 않은 노동자를 두지 않겠다는 (미) 정부와의 약속을 어기는 순간 법적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대규모 투자가 면죄부 될 순 없어
비자 문제 한국, 실력 문제 미국
이번 단속 계기로 딜레마 풀어야
최근엔 트럼프 정부가 사업장 단속을 늘린다는 보도가 있었다. 서류 미비 이민자를 대량으로 출국시키는 데 효율적이라고 봤다는 것이다. 해당 배터리 공장에서 일하던 미국인 노동자 65명이 그만둔 걸 두고 노조 간부가 미 언론에 “우린 작업을 잘 수행했는데 불법 체류 노동자들로 대체됐다. 큰 타격이었다”고 항의한 일도 있었다.
아마 한국 기업들은 지금까지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원래 사고는 날 때까지 나지 않는 법이다. 불법 이민 단속이 최우선 과제인 트럼프 정부가 비자와 어긋난 일을 하는 수백 명이 있는 사업장을 지속적으로 눈감아 준다? 폭스 뉴스는 이번 단속을 대승리라고 보도했다. 캘리포니아·일리노이·워싱턴DC 변호사인 이원기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설명했다.

-투자하면 봐주지 않나.
“투자는 면죄부가 아니다. 미국은 기업 규모나 국적과 무관하게 이민·노동·안전 규정을 똑같이 적용한다. 사업장 단속은 ▶채용 시 신원·취업자격 확인 ▶현장 안전 ▶임금·휴게 규정 같은 기초 의무를 제대로 지켰는지 본다. 한 고리라도 어기면 공사·가동이 멈출 수 있다.”
-본사 엔지니어가 출장 비자(B-1)로 설치·시운전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나.
“현장 설치·생산·정비는 보통 취업 활동으로 본다. 비자 목적과 실제 업무가 어긋나면 단속 1순위가 된다.”
구조적 요인도 있다. 다들 얘기하는 비자 쿼터다. 지난 20년간 해결하려 했으나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상황이 더 나빠진 건 바이든 정부 때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관대한 연방 보조금과 주·카운티 차원의 추가적 유인책에 이끌려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배터리·전기차 공장 건설에 수백억 달러 투자를 약속했고 이행했지만, 바이든 정부는 비자 문제를 풀지 못했다. 그저 “미국인을 고용하라”고만 했다. 그러다 트럼프 시대가 됐다. 트럼프는 투자하라고 팔까지 비틀며 비자 단속에도 나섰다.
이젠 다들 딜레마다. 한국 기업들은 약속대로 미국인을 고용하려면 공장을 지어야 한다. 그러려면 대규모의 한국인 숙련 인력이 필요하다. 지금 비자 체제에선 불가능하다. 지금처럼 불법 논란을 부를 '빨리빨리' 방식으론 안 되게 됐다. 트럼프 정부로선 제조업을 살리려면 공장을 지어야 하는데 지금 인력난이나 실력 문제를 감안하면 쉽지 않다. 불법 체류를 눈감아줄 수도 없다. 전 세계로 방송된 이번 체포 장면을 보며 '외자 유치와 이민 통제'란 트럼프의 조율되지 않는 정책 혼선을 절감한 외국 정부와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할 순 있으나 집행을 미루고 또 미룰 것이다. 트럼프 집권이 끝날 2029년이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뭐가 문제인지 확연해졌다는 것이다. 안호영 전 주미대사가 “이제 미국 사람들도,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도 이 문제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대규모 투자를 위한 제도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했는데 맞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고 현명하게 해법을 찾아야 한다.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