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위기 속 예술의 힘은 무엇일까?

2025-01-09

역사는 위기의 순간에 어떤 정치적 지도자가 나오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바뀐다. 현대사에서 최대의 위기 국면을 강력한 리더쉽에 의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 지도자를 꼽으라면 단연 윈스턴 처칠(1874~1965)이 아닐까.

양차 세계대전의 위기 속에 그가 보여준 자유민주주의와 보편적 휴머니티에 대한 불굴의 정신은 세계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특히 히틀러의 잔혹함과 스탈린의 억압에 대항하여 그는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의 존중이야말로 최후의 보루임을 일깨워주었다. 도대체 그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어떻게 그토록 강력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의 놀라운 리더십에는 무엇보다 언어가 가진 진정성과 그에 걸맞는 헌신적 실천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는 한 마디로 실천의 정치가였고 그 실천의 동력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존엄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었던 것이었다. 생각과 언어, 그리고 행동이 일관성을 가졌다는 점이야말로 그의 큰 무기였다.

런던 대공습 때도 붓 잡은 처칠

“그림 없이는 전쟁 못 견뎠을 것”

‘대담한 결정에도 도움’ 고백

그렇다면 그 정치적 실천을 뒷받침한 굳건한 의지력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정심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을까? 그 특유의 리더십이 그의 풍부한 인문적·예술적 소양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개인적 매력에 더해 위대한 지도자의 덕목 하나를 더 깨닫게 된다. 예컨대 그 위기 국면에서도 문·무를 겸한 그의 르네상스적 전인성이 큰 아우라를 발휘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그가 노벨문학상(1953)을 받을 정도로 문학적 자질이 뛰어났던 것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그의 그림 실력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듯하다.

처칠이 그린 수백 점의 그림 중 대표작의 하나인 ‘쿠투비야 모스크의 탑’(1943·사진 ①)은 모로코 마라케시의 이국적 풍경을 그린 유화로, 빛의 미묘한 차이를 섬세하게 포착한 인상주의풍의 작품이다. 아마도 한가한 여행 중에 그려진 그림이라 여기기 쉽지만, 사실 이 그림은 그가 전쟁 중에 그린 것이다. 세계 2차대전이 한창 중인 1943년, 그것도 인류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막중한 상황 속에 제작되었다. 당시 처칠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카사블랑카 회담 이후 마라케시를 방문 중이었고, 이후 처칠은 이 그림을 루스벨트에게 선물했다. (이 그림은 나중에 배우 앤젤리나 졸리의 소유가 된 후, 2021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860만 파운드(약 129억원)에 낙찰되며 처칠의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한 바 있다.)

처칠은 전 생애 동안 무려 500여 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는데, 나중에 대중에게 공개되었고 미술계에서도 큰 찬사를 받았다. 차후에 그의 그림들은 런던 왕립예술원을 비롯해 워싱턴DC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되면서 처칠의 진면목을 드러내게 되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의 전차’ 같은 삶을 살았던 그의 생애에 비추어 볼 때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그림은 처칠의 ‘평생의 동반자’였으며, 정치와 전쟁으로 인한 과중한 압박을 해소하고 마음의 중심을 잡는 데 중요한 구심점이었다. 처칠은 그림 그리기와 같은 창작행위가 정신 건강과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었으며, 특히 과중한 업무의 중압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담은 그의 수필집 『취미로서의 회화』(1948)는 궁극적으로 창의성·회복력, 그리고 인간 정신에 대한 찬미라 할 수 있다. 특유의 재치와 웅변적인 문체로 쓰인 이 책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고, 가장 힘든 순간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책에서 그는 그림이 그에게 인내심과 용기, 대담한 결정을 내리는 가치를 가르쳤다고 설명하며, 이를 군사 전략과 리더십의 도전과 연결지었다. 히틀러의 런던 대공습이 도시를 초토화시켜 매시간, 분, 초를 다투며 고통스러운 결정들을 내려야 했던 때에도, 처칠은 집 근처의 풍경을 그리려 시간을 할애했다. “그림이 없었더라면 나는 전쟁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사진 ②) 오직 광기와 증오의 불길만을 지펴 올렸던 히틀러는 어쩌면 이런 처칠에게 이미 정신적으로 백기를 들었던지도 모른다.

사회가 큰 위기에 처하면 대체로 예술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는 그 무엇이 되어버리는 듯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적어도 처칠의 경우를 보면 그의 강력한 지도력이 예술의 힘으로 버텨진 것을 알 수 있다. 새삼 오늘 같은 혼란스런 시국에 예술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전영백 홍익대 교수 미술사·시각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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