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에 '생존'이란 단어는 이제 교육과 연구만큼이나 익숙하다. 2021년, 한국의 대학은 공급 초과로 전환되는 데드크로스를 맞이했다. 2024년 대학 입학정원은 47만 명이었지만, 실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학생은 37만 3천 명에 불과했다. 즉, 9만 7천 명의 정원이 공석으로 남았고, 이는 1,500명 정원의 대학 61개가 문을 닫아야 하는 규모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2024년 한 해 동안 태어난 아이는 24만 2천 명. 이들이 대학에 입학할 2043년에도 2024년과 같은 74.9%의 대학 진학률이 유지된다면,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 수는 18만 1천 명에 불과할 것이다. 현재 대학 정원의 38.9% 수준으로, 5개 대학 중 3개가 사라지거나 각 대학의 신입생 정원 5명 중 3명이 채워지지 않는 상황을 의미한다. 대학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세계로 눈을 돌려보자.
2025년 3월 기준 세계 인구는 82억 명으로, 1900년 16억 명에서 5.1배 증가했다. 2050년에는 100억 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뿐만아니라, 세계인의 평균 교육 수준은 1980년 5.3년에서 2010년 7.8년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인구 증가와 교육 수준 향상이 결합하면서, 고등교육 산업은 폭발적인 성장성을 가진 유망 산업이 되었다.
세계 대학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중국은 공인 대학 수를 2000년 500여 개에서 2024년 3,117개로 늘렸고, 여기에 미인가 사립대학, 해외 합작대학, 기업대학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은 대학이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베트남 역시 대학 진학 희망자가 폭증하는 반면, 국내 대학이 부족해 해외 유학이 급증했다. 이미 한국과 일본에서 베트남 유학생 수가 중국 유학생 수를 초과한 지 오래다.
대학에 대한 수요는 동남아, 서남아, 아프리카까지 확산되고 있다. 인구가 1.2억 명인 필리핀은 1,500여 개의 대학을 보유해 인구 5천2백만명인 한국의 대학 417개 보다 4배 가까이 많고, 인구 2.8억 명인 인도네시아는 3,000개로 한국의 8배 가까이 많다. 인구 대비 대학 수를 보더라도, 이들 국가는 한국보다 2배 가까이 많다. 대학 교육은 반도체, 바이오산업 못지않은 글로벌 미래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학도 기업처럼 세계화를 해야 한다.
반도체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자동차의 현대·기아차는 수출과 해외투자로 세계화를 이룬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고 해외 캠퍼스를 설립함으로써 세계로 나가야 한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는 학생이라는 원자재를 해외에서 확보해 교육한 뒤 해외로 다시 수출하는 것과 같고, 해외 캠퍼스 설립은 현지에서 학생을 유치해 교육하고 취업까지 연결하는 투자 활동과 같다.
미국, 영국, 호주 등 주요 국가들은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통해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미국 대학들은 대부분 외국인 학생 비율이10% 이상이며, 호주와 싱가포르 같은 고등교육 선진국은 전체 학생의 30~50%를 외국인 유학생으로 채운다. 이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대학은 외국인 학생 없이 운영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2019년 OECD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외국인 유학생을 통해 약66.3조 원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했다. 영국, 호주, 일본, 캐나다, 뉴질랜드, 프랑스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한국은 세계 7위의 무역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에서는 주요 국가 순위에 들지 못하고 있다. 왜 한국 대학들만 이 거대한 기회를 놓치고 있는가?
대학의 세계화 전략,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대학이 세계화를 추진하는 목적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경제적 목적이다. 줄어드는 내국인 학생 수를 해외 유학생으로 보충해 대학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교육적 목적이다. 국내 대학생들이 캠퍼스에서 외국인 유학생과 함께 학습하고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글로벌 감각을 익히게 된다.
셋째, 박애적 목적이다. 유학생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미래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세계적인 고등교육 기관으로서의 책임이자 기여다.
넷째, 인재 확보 목적이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취업해 경제와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 주요 대학들은 이미 글로벌 확장을 실행 중이다.
1990년대 싱가포르와 홍콩에 해외 캠퍼스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2000년대에는 중동과 중국으로 진출했다. 최근에는 동남아로 확장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대학들은 해외 캠퍼스를10개 이상 설립하고 있다.
한국 대학들도 세계화를 추진해야 한다.
첫째, 외국인 학생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 미래에는 내국인 학생만으로는 대학 정원의 절반도 채울 수 없다. 외국인 학생 비율을 50%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영어로 전 과정이 운영되는 전공을 개설하고, 다국어가 가능한 교직원을 확보하며, 캠퍼스 내 모든 안내와 공문서에 한국어와 영어를 병기해야 한다. 싱가포르와 홍콩처럼 외국인 학생의 학비를 적정 수준으로 책정하고, 이들에게 수준 높은 교육과 행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학생을 위한 가계 지원 장학금(Needs-based Scholarship)도 마련해야 한다.
둘째, 해외 캠퍼스를 적극적으로 설립해야 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국 대학의 교육 프로그램과 교수진을 높이 평가하며, 캠퍼스 유치를 원하고 있다. 한국어학원뿐만 아니라, 학부 과정도 해외 대학과 공동 운영해야 한다.
대학은 이제 세계를 무대로 삼아야 한다.
적극적인 외국인 유학생 유치와 해외 캠퍼스 설립을 통해, 한국 대학들은 글로벌 교육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대학 산업이 반도체, 자동차 산업과 함께 한국의 세계화를 이끄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대학의 생존 위기, 세계화만이 답이다.
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 dscho123@gmail.com
◆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서울과학종합대학원 발전자문위원 겸 석좌교수, 국제연합훈련조사원 SDG경영대학 이사장도 맡고 있다. 서울대 국제지역원장·경영대학장, 북경 장상강학원 전략전공 교수, 국립인천대 총장, AI경영학회 창립회장, 국제경영학회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