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교육, 한·일의 엇갈린 길

2025-02-25

고교 무상교육에 약 5000억엔의 정부 예산이 추가로 투입된다. 학부모로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2009년부터 고등학교의 수업료를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다. 현행 제도에는 소득 기준이 있다. 공립고등학교의 경우 연 소득금액 910만엔 미만인 가구는 연간 수업료에 해당하는 11만8000엔을 지원받는다. 사립학교도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연 소득금액 590만엔 미만인 가구는 최대 39만6000엔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으로 소득 기준은 모두 폐지되고, 사립고등학교의 수업료 지원금도 45만7000엔으로 인상된다. 부모의 수입과 관계없이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학교 선택의 폭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그중 하나가 공립학교의 위기이다. 바로 ‘사립고 시프트’라는 현상이다. 일본에는 1300여개의 사립고등학교가 있다. 저마다 특색 있는 교육 방침을 내걸고 자체 입시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거주 지역과 상관없이 선택할 수 있어 입시 경쟁이 치열하다. 사립고등학교 수업료는 공립학교의 5배 정도다. 공립학교보다 교육 환경이 좋은 것도 사실이지만, 서민에게는 부담이다. 사립학교 지원금이 인상되면 비싼 수업료가 부담돼 진학을 주저했던 학생이 사립학교로 몰릴 것이 우려된다. 이와 같은 사립고 시프트 현상은 사립학교의 40%가 집중된 대도시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사카부는 독자 예산을 투입해 소득 기준을 폐지하고 사립학교 학생에 대한 지원액을 인상했다. 그 결과, 공립학교의 절반 이상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도쿄도도 마찬가지이다. 도쿄도가 올해 실시한 조사에서 사립고등학교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 비율이 최고를 기록했다. 고교 무상교육 확대로 공립학교의 위기가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선택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도입된 소득 기준 폐지가 교육의 근간이 되는 공립학교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소득 기준 폐지로 인한 혜택이 부유한 가정에 집중돼 교육 격차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소득 기준을 두고 있는 현행 제도하에서 약 70%의 가정이 이미 혜택을 받고 있다. 나머지 30%는 연 소득이 910만엔 넘는 고소득층이 대부분이다. 정부 지원금이 없어도 사립고의 비싼 수업료를 지급할 능력이 있는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소득 기준 폐지의 혜택이 이들에게 집중돼 교육 격차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비판에 문부과학대신은 고교 무상교육 확대에 따른 부작용을 자세히 검토해 제도를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정부 책임하에 무상교육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

일본에서 고교 무상교육 확대를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사이, 한국 정부가 고교 무상교육 국고 지원을 3년 연장하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작용은 있지만 무상교육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일본 정부. 예산을 핑계로 무상교육 책임을 회피하는 한국 정부. 일본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에 처음으로 안도하는 씁쓸한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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