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다, 이주노동자 ‘인신매매’

2025-04-16

4월이 왔다.

매년 4월16일에는 반드시 안산에 간다. 포항에 살게 되면서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세월호 관련 활동에 내가 원하는 만큼 자주 참여하지 못하게 된 점이 아쉽고 죄송하다.

대신 나는 다른 여러 가지 사안들을 접하게 된다. 최근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 문제와 관련하여 통역을 했다. 활동가님이 전화로 나에게 의뢰하면 나도 전화로 피해자분의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활동가님에게 전달하는 간단한 일이었다.

피해자 M씨와는 러시아어로 통화를 했다. 대략 3개월 기간 동안 사업장 두 곳에서 일을 했고 두 군데 모두에서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사업장은 이주노동자 본인이 아니라 브로커에게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지급한다. 그러면 브로커가 자기 수수료를 제하고 이주노동자에게 나머지 돈을 지급해야 하는데, 그냥 훔쳐먹은 것이다.

M씨는 자신이 일한 사업장, 일한 날짜, 약속된 일당의 액수를 다 적어두었고 브로커인 ‘김사장’의 명함 사진과 자동차 번호판 사진까지 꼼꼼하게 찍어뒀다가 나에게 전부 보내주었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M씨가 이전에 얼마나 피해를 입었으면, 혹은 피해 상황을 얼마나 많이 목격했으면 이렇게까지 해두었을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전에도 이와 비슷한 피해를 입은, 같은 구소련 지역 출신 이주노동자의 통역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브로커가 한국계 러시아 사람이었다. 이주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생충들에게는 혈통도 국경도 없다.

2023년 1월1일부터 시행된 ‘인신매매 등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성매매와 성적 착취, 노동력 착취’ 등을 목적으로 사람을 착취하는 행위는 인신매매에 속한다. 구체적으로는 폭행이나 협박뿐 아니라 ‘사람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는 행위’ ‘업무관계, 고용관계,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사람을 보호, 감독하는 자에게 금품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하기로 약속하는 행위’도 인신매매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남의 임금을 떼먹는 브로커는 물론, 노동자가 일해서 번 돈을 노동자 본인이 아니라 브로커에게 지급해서 ‘금품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하는 사업장과 그 사업주도 인신매매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M씨는 나에게 여러 번 애타게 전화를 해서 “소식 있냐”고 물었다. 당연히 하루이틀 사이에 ‘김사장’을 잡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나도 M씨도 러시아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약간 어려움이 있었는데, 몇번의 대화를 거쳐 나는 M씨뿐 아니라 친구 A씨도 같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같은 사업장 두 곳에서 같은 날짜에 일했고 같은 브로커에게 임금을 도둑맞았다. 일당으로 대략 계산해 보니까 M씨와 A씨 두 사람이 도둑맞은 석 달치 임금은 1000만원이 넘었다.

인신매매 등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인신매매를 저지르는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문제의 ‘김사장’은 내가 들은 것만 해도 이미 1000만원이 넘는 남의 임금을 훔쳤다. 법률을 최대한 적용해서 ‘김사장’을 붙잡아 30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해도 이미 그 이상의 돈을 떼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김사장’이 만약 벌금을 고분고분 납부한다 해도 그 돈은 ‘김사장’의 돈이 아니라 그가 훔친 남의 돈, 이주노동자가 머나먼 타향에 와서 몇달씩 힘겹게 일해서 번 돈일 것이다.

M씨와 친구 A씨가 일하는 곳, 그리고 임금체불 피해를 입은 곳은 경기도였다. 전에 내가 통역했던 피해자는 충청도에 있었다. 러시아어 통역할 사람을 구하기 힘드니까 돌고 돌아서, 경북지역 활동가에게 연락이 와서 내가 통화를 하게 된 것이다. 이전에 또 다른 활동가님은,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국가에서 오신 이주노동자들은 프랑스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프랑스어 통역을 비수도권 지역에서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셨다. 일상 회화 수준을 넘어서 노동 관련 용어나 법률 용어를 조금은 알고 있어야 해서 더 어렵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 프랑스어 배웠는데,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그랬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착취는 근본적으로 호의를 가진 개인 몇명이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부는 인신매매를 체계적으로 방치하고 있다. 이것은 이제 파면 이후의 세계를 맞이하여 우리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수많은, 중대한 문제들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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