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기쁨도 잠시…폐허가 된 고향 복귀한 레바논 주민은 '절망'
"우리는 모두 패배"…이스라엘 북부 주민들도 휴전 지속 가능성에 의구심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휴전 소식에 가장 기뻐한 것은 100만 명의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피란민들이었다.
2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휴전이 발표되자 수도 베이루트에서 남부 레바논 국경지역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에서는 극심한 정체가 빚어졌다.
전쟁 발발 직후 이스라엘의 집중포화를 피해 피란길에 올랐던 국경지대 주민들이 한시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동차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집을 떠날 당시 챙겨온 각종 가재도구를 실은 자동차들은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좀처럼 움직이진 않았지만, 피란민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몇개월 만에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자동차에선 레바논의 '국민 가수' 파이루즈의 노래가 흘렀고, 일부 피란민들은 헤즈볼라의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이스라엘과의 휴전은 사실상 헤즈볼라의 승리'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 같은 축제 분위기는 남부 도시 시돈 입구에 레바논 군이 설치한 검문소에 도달하는 순간 사라졌다.
피란민들은 '집 주변에서 불발탄을 보더라도 절대 손대지 말라'는 경고를 담은 전단부터 읽어야 했다.
설마설마하던 피란민들이 목격한 것은 이스라엘의 융단폭격이 남긴 폐허였다.
유리창이 깨지고, 벽이 무너지는 등의 피해를 본 피란민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집이 있어야 할 자리에 콘크리트 더미가 쌓인 장면을 목격한 주민들도 적지 않았다.
운 좋게 집이 파손되지 않은 피란민들도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60일간의 휴전 기간 중이라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이 언제든 공격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피란민은 일부 주민이 헤즈볼라의 깃발을 흔들면서 환호하자 "무슨 승리를 했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폐허와 죽은 사람들을 보라. 우리는 모두 패배했다"고 말했다.
국경 넘어 이스라엘 북부 주민들도 휴전 소식에 기쁨보다 걱정이 앞선 상황이라고 CNN이 전했다.
전쟁 발발 후 계속됐던 헤즈볼라의 공격이 멈추게 된 것은 환영할만하지만, 근본적인 위험은 여전하다는 정서가 강하다는 것이다.
국경 지대에 거주하는 한 이스라엘 주민은 "2년 정도 후에는 헤즈볼라가 공격을 재개하지 않겠느냐"며 "또한 30~40년 후 자녀 세대들도 여전히 공격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헤즈볼라와의 적대관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체념이다.
이스라엘 북부에서 헤즈볼라의 공격을 피해 거주지를 떠난 주민들은 6만2천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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