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경학적인 위협보다 인구 위기가 더 심각”

2026-01-05

지경학(地經學, Geoeconomics)은 국가의 전략적·정치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관세나 산업정책 등 경제적 수단을 활용하는 현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시대의 상징어다. 지정학(地政學, Geopolitics)이란 말보다 더 많이 쓰이는 듯하다.

지경학이란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은 미국 전략 전문가인 에드워드 루트워크(84)다. 그는 1990년 미국의 국제관계 매거진 내셔널인터레스트(National Interest)에 쓴 ‘지정학에서 지경학으로: 갈등의 논리, 상거래 문법(From Geopolitics to Geo-Economics: Logic of Conflict, Grammar of Commerce)’이란 글을 통해서다.

박정희와 인연

시대의 상징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개념을 처음 제시한 사람의 설명을 직접 들어봐야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가 지경학의 아버지를 화상으로 인터뷰한 이유다. 루트워크는 인사를 끝내자마자 밝게 웃으면서 “한국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며 “박정희가 숨지기 전에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언제 무슨 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났는가.

“박정희가 1979년 10월 26일 저격당하기 직전에 두세 차례 만났다.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 책임자와 함께였다. 경제개발 등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제국주의 일본의 군인이었다. 경제를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지경학을 잘 이해하고 실행했다.”

박 전 대통령이 어떻게 했기에 그런가.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을 때 한국의 소득 수준은 아프리카 가나 수준이었다. 의료 등 삶의 질은 아프리카보다 못했다. 한국 날씨가 일본의 벼농사 지역보다 추웠다. 산업 시설은 대부분 북한에 있었다. 박정희가 물려받은 나라는 가난한 농업국가였다. 그는 기업인에게 친화적인 분위기(warm atmosphere for businessmen)를 조성했다. 특히,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장려해 기업인이 부를 쌓도록 했다. 그 시절 한국은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 관세장벽만 쌓은 게 아니었다. 무조건 수입을 막았다. 미 자동차 기업들이 한국에 차를 거의 팔지 못했다. 미 정부가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런 박정희 정책이 바로 지경학의 예다.”

지경학은 전쟁의 논리

경제학에선 관세를 낮춰 교역을 늘리는 게 서로 이익이라고 하는데.

“지경학은 전쟁의 논리와 비슷하다. 전시엔 군대로 한 지역을 점령할 수 있다. 평시엔 국가적인 투자를 벌여 한 산업을 지배한다. 예로 들면, 처음에는 한국이 일본산 TV를 수입했지만, 얼마 뒤엔 한국에서 TV 제작을 시작했다. 한국 정부가 많은 돈을 연구개발(R&D) 등에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희생이 따랐지만, 끝내 한국은 세계 TV 산업을 ‘점령했다(conquered)’.”

희생이 따랐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한 나라가 어떤 산업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희생을 치러야 한다. 엄청난 R&D와 설비 투자를 불사하고, 생산비용보다 낮은 가격에 수출해야 한다. 한국은 자동차를 생산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수출했다. 1982년 일본 정부는 이른바 ‘5세대 컴퓨터(대규모 병렬 컴퓨팅과 논리형 프로그래밍을 기반으로 하는 컴퓨터)’를 개발하기 위해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이 미 함대는 무찌르지 못했지만, IBM 대형 컴퓨터만큼은 부숴버리기 위해서였다. 5세대 컴퓨터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났지만, 지경학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보여주었다.”

지경학 아버지 눈에 트럼프의 관세전쟁이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

“한국인은 트럼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미국인의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팬데믹 이전까지 미국인은 월가 시각으로 세계화를 봤다. 세계화가 모든 나라의 부를 늘리는 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미국이 양말 등 거의 모든 것을 중국이나 한국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중국 등이 미국에 수출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위협과 불안감 등이 트럼프 지정학의 어머니다. 트럼프가 경제적 수단(관세전쟁)으로 위협에 대응하고 있다.”

“거대한 구멍

한국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의 지경학적인 공세에 끼어있는 모양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이나 중국 모두 한국이 필요하다. 어느 쪽도 한국을 부숴버릴 수 없다. 이런 두 나라 사이에서 한국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위치다. 두 나라 경쟁이나 갈등이 한국에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한국을 위협하는 것은 내부에 있다.”

무슨 말인가.

“박정희 지경학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동시에 거대한 구멍(gigantic hole)도 남겼다. 바로 저출산이다. 한국의 여성 지위는 전통적으로 남성보다 아주 낮았다. 한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일본 여성만 못했다. 한국 경제력이 커지면서 여성이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화여대 같은 여성 고등교육 기관을 졸업한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있다.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한다. 그 바람에 한국이 이스라엘보다 위험해지고 있다.”

진짜 그런가.

“한국은 1950년대 전쟁을 경험했다. 이후 평화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지금도 전쟁 중이다. 아랍을 상대로 전쟁하는 와중에도 기술 투자가 이뤄지고 있고, 텔아비브 증시가 일상적으로 돌아간다. 이스라엘 여성들은 군대에 복무하면서도 아이를 낳는다. 이런 이스라엘보다 한국의 출산율이 낮다. 한국에선 노인만 늘어나고 있다.”

◆에드워드 루트워크=1942년 루마니아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2차대전 직후 소련군 점령을 피해 이탈리아 시칠리아로 이주했으나, 교육은 주로 영국에서 받았다. 런던정경대(LSE)에 진학해 경제학을 공부했다. 1967년 3차 중동전이 벌어지자 자원해 이스라엘군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 존스홉킨스대에서 국제관계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전략: 전쟁과 평화의 논리(Strategy: The Logic of War and Peac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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