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J.L-A.L_ 장 뤽 앰브리지 라벨 인터뷰: 베일에 감춰진 ‘독학 디자이너’

2024-11-30

2022년에 설립된 브랜드, _J.L-A.L_. 브랜드의 역사는 3년이 채 되지 않지만, 서사는 여러 개의 마침표와 언더바로 장식된 브랜드명만큼이나 독특하다.

브랜드의 시작은 이렇다. 갓 대학을 졸업한 장 뤽 앰브리지 라벨은 팬데믹 기간 독학으로 패션 디자인을 배웠고, 자신의 습작을 인스타그램으로 공유했다. 사각형의 프레임 안에서 그가 만든 직선적인 패널과 심 테이핑 등으로 장식된 날렵한 실루엣은 사람들의 ‘더블터치’를 유발했다. 당시 ‘고프코어’ 트렌드 속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습작 사진에는 구매를 문의하는 댓글이 달렸고, 조금씩 인스타그램 알고리즘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트폴리오에 가까웠던 그 계정은 주목받는 패션 브랜드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_J.L-A.L_의 탄생 비화는 자신의 브랜드를 준비 중인 신인 디자이너라면 참고하면 좋은 행보다. 브랜드 런칭 전부터 구축된 확고한 팬 베이스는 분명 브랜드 운영에 큰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 뤽 앰브리지 라벨은 계산적이지 않았다. 어찌 보면 브랜드 런칭은 우연에 더 가까웠다. “원래 작업물 사진을 올린 건 디자인 관련 일을 구하기 위한 포트폴리오를 쌓기 위해서였어요. 결국에는 제 브랜드를 시작하게 됐지만요.”

하지만 그는 곧 본래의 목표도 함께 이루게 됐다. _J.L-A.L_에 대한 소문이 일본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골드윈의 귀에도 흘러 들어가면서다. 그 결과 신인 디자이너에 불과했던 장 뤽 앰브리지 라벨은 골드윈의 실험적인 라인, 골드윈 0의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중 하나로 활약하게 됐다.

그리고 장 뤽 앰브리지 라벨과 골드윈이 또다시 만났다. 이 전과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참여가 아닌 협업이다. 컬렉션 명 전면에 _J.L-A.L_의 이름이 적혔다. 그 차이는 디자인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장 뤽 앰브리지 라벨이 참여자 입장에서 디자인한 골드윈 0 라인과는 달리, 이번 협업 제품군은 골드윈의 기술력을 녹인 _J.L-A.L_의 옷에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독학 디자이너가 몇 년 사이에 브랜드를 설립하더니, 한 때 직장이었던 브랜드와 협업 컬렉션까지 냈다. 분명 자랑할 만 한 일이지만, 장 뤽 앰브리지 라벨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장 뤽 앰브리지 라벨과 나눈 대화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에 도착한 지 얼마나 됐나요?

18시간 정도밖에 안 됐어요. 서울 방문은 두 번째인데, 이번에는 도시를 제대로 즐겨 보고 싶어요. 저번엔 일만 하다 갔거든요.

_J.L-A.L_은 어떤 브랜드인가요?

_J.L-A.L_은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여러 영역을 탐구하며 진화하는 컨템포러리 남성복 브랜드예요. 팬데믹 기간 처음 옷을 만들기 시작해, 2022년부터 공식적으로 전개하게 됐죠.

브랜드를 시작하기 이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직접 만든 옷을 세상에 선보이던 게 기억나요. 처음부터 브랜드 설립을 염두에 두고 계정을 운영했나요?

2020년쯤이었을 거예요. 당시만 해도 제 브랜드를 차리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저 취업 포트폴리오라도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옷을 만들기 시작했죠. 그러다 갑자기 슬램 잼의 도움으로 제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시작하게 됐어요.

이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이름의 약자에서 따온 브랜드명의 표기법이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어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가요?

처음에는 제 이름의 약자인 ‘JLAL’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렇게만 놓고 보니 어딘가 심심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약간의 요소를 추가했어요. 이름이 복잡한 건 저도 알아요. 저조차도 이메일을 쓸 때면 그냥 브랜드명을 ‘복붙’해서 넣어요(웃음).

골드윈과 _J.L-A.L_의 협업 컬렉션 팝업을 서울에서 열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서울은 저희 브랜드와 확실한 공감대가 있는 도시에요. 또 이곳에는 과거 파리 패션위크에서 사귄 친구들도 많고, _J.L-A.L_이 입점한 숍도 많아요. 이곳에서 팝업을 열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보자고 생각했죠.

고성능 의류부터 자연 속에서 찍은 캠페인 화보까지, 이번 골드윈 협업은 진정한 아웃도어 의류 컬렉션처럼 보여요. 이번 컬렉션의 주안점은 무엇이었나요?

주안점은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에서 착안해 과거의 올림픽 스키 유니폼 디자인을 전복해 보는 것이었어요. 동시에 제가 과거에 참여한 골드윈 0의 컬렉션을 이어서 연재해 보자는 생각도 했었죠.

스키 유니폼에서는 어떤 디자인적 영향이 있었어요?

골드윈과 함께 세계 각국의 스키 유니폼 아카이브를 뒤지고, 쓸 만한 디자인 요소를 가져온 뒤 그걸 단순화하며 작업했죠. 최대한 깔끔하고, 단순한 실루엣을 얻기 위해서요.

과거 _J.L-A.L_의 옷 디자인을 ‘신-맥시멀리즘’이라고 칭한 바 있는데, 이번 컬렉션은 ‘신-맥시멀리즘’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 반대죠. 요즘 제 목표는 가능한 많은 요소를 삭제하면서도 _J.L-A.L_의 색을 보여주는 거예요.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면서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걸 만드는 게 더 즐거워졌거든요.

‘독학 디자이너’나 다름없었던 2022년, 골드윈의 골드윈 0 컬렉션을 통해 이름을 세간에 공식적으로 알렸어요. 당시 협업은 어떻게 성사됐나요?

브랜드 설립 초기에 온라인 매거진 <사부카루>와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당시 골드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타로가 그 보고 저에게 DM을 보냈어요. 재밌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참여할 생각이 있냐고 묻더군요. 믿기지 않았어요. 커리어 초창기다 보니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이렇게 빨리 맡게 될 줄 몰랐거든요.

그랬던 골드윈과 다시 만나니 어때요?

놀랍죠. 제가 골드윈 0 프로젝트에서 손을 뗄 무렵에 타로도 퇴사하고 자기 에이전시를 차렸는데, 이번 협업 컬렉션에는 타로도 다시 참여했어요. 드림 팀의 재결합인 셈이죠.

이번 협업 컬렉션은 과거에 참여한 골드윈 0 제품군과 차이점이 있다면요?

이번 협업 컬렉션은 골드윈이라는 브랜드를 바라보는 _J.L-A.L_의 여과되지 않은 시선 속에서 탄생했어요. 이전 골드윈 0 라인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더 다양한 모습이 녹아들어 있는데, 이번 컬렉션은 오직 _J.L-A.L_ 팀원들만이 참여한 골드윈의 모습에 가까워요.

이번 협업 제품에도 골드윈 0 첫 컬렉션에 사용된 발효 단백질 원단이 사용됐어요. 어떤 소재인가요?

유전자 조작을 거친 박테리아에 글루코스를 탄소원으로 써서 나온 단백질로 짠 원단이에요. 다른 재생 소재와도 혼방이 가능하고, 물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에요. 용도가 다양한 친환경 원단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이유가 있나요?

패션 산업에 종사한다면 당연히 지속가능성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패션은 본질적으로 파괴적인 산업이니까요.

패션의 여러 장르를 놓고 보면 지금의 _J.L-A.L_은 기능성을 내세우는 테크웨어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 같은데, 의류의 기능성과 지속가능성은 양립 가능하다고 생각하나요?

지속가능성은 정말 어려운 용어예요. 지속가능성이라고 하면 다들 친환경 소재를 떠올릴 텐데, 저는 지속가능성이 의도에 관한 것으로 생각해요. 예컨대 견고한 고어텍스 원단을 사용한 옷은 오래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 가능하다고 볼 수 있죠. 설령 그게 재생 소재가 아니더라도요. 그래서 제 목표는 단순히 친환경 원단을 쓰는 걸 넘어, 오래 입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거예요. 물리적으로 튼튼하면서도, 심미적으로도 가치 있는 옷이요.

하지만 패션 트렌드는 빠르게 바뀌죠. _J.L-A.L_도 점차 아웃도어의 영역에서 벗어나 테일러링에 기반한 의류, 클래식 풋웨어 등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는데, 변화의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취향의 변화 같아요. 브랜드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에는 테크니컬한 옷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취향이 더 넓어졌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저 그때그때 관심 가는 영역을 계속해서 실험하고, 연구하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_J.L-A.L_의 최종 단계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럼 _J.L-A.L_의 최종 단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전혀 모르겠어요. 과연 최종 단계라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확실한 건 _J.L-A.L_은 영원히 진화하는 브랜드로 남을 거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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