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염·폭우·한파·감염병 등 기후재난이 일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기후보험’이 새로운 필수 보험으로 주목받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펴낸 ‘2023 재해연보’에 따르면 2023년 자연재해로 사망자 140명과 이재민 8332명이 발생했다. 기후재난은 특히 취약계층에 더 직접적이고 큰 강도로 다가온다. 이러한 점에서 기후보험은 단순한 보험상품을 넘어 기후불평등을 완화하는 새로운 사회안전망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후보험은 이상기후에 따른 인명 피해나 건강 이상에 대한 진단서 등의 간단한 증빙만으로 정액 보상을 제공한다. 기존의 풍수해보험이나 농작물·가축 재해보험이 생산재 손실 중심의 보장이었다면, 기후보험은 개인의 삶과 건강까지 포괄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피해자 본인의 신청만으로 일정 금액의 위로금을 빠르고 간편하게 수령할 수 있어 취약계층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에서는 이미 기후보험을 법제화·의무화하는 흐름이 나타난다.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이탈리아, 기업의 기후보험 가입 의무화’ 보고서에 따르면 이탈리아 정부는 낮은 민간 보험 가입률로 인한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업에 기후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이탈리아의 기후보험 가입률은 5% 정도인데, 재난이 발생하면 정부가 기업에 직접 보상과 세제 혜택을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2023년 자연재해로 9582억2100만원의 피해액이 발생했으며 이를 복구하기 위해 2조649억9000만원이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농경지와 농작물 피해액은 2786억4300만원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향후 3년 동안 50억유로 규모의 재보험 기금을 조성하고 공공기관인 수출보험공사를 통해 보험회사의 손실 부담을 분담할 계획이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화재보험·자동차보험·생명보험 등 주요 보험에 자연재해 담보 특약을 의무 부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기후보험 도입 실험이 시작됐다. 경기도는 4월 전국 최초로 도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기후보험을 도입했다. 도민들은 별도의 신청 절차 없이 기후보험에 가입돼 2026년 4월10일까지 기후 관련 질병과 상해를 보상받을 수 있다. 보험금은 사고일로부터 3년 이내까지 청구할 수 있다. 온열질환·한랭질환 진단비, 감염병 진단비, 기상특보 관련 4주 이상 상해 시 사고위로금이 정액 보장된다. 기후취약계층은 이에 더해 ▲온열질환·한랭질환 입원비 ▲기상특보 시 의료기관 교통비 ▲기후재해 시 구급차 이·후송비 ▲기후재해 정신적 피해 지원을 추가로 보장받을 수 있다.
기후보험의 첫 보험금 수령자도 나왔다. 경기도는 20일까지 말라리아 환자 2명과 쓰쓰가무시증 환자 1명에게 각 10만원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도 관계자는 “농민과 고령자 등 온열질환에 취약한 도민을 대상으로 기후보험을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해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번이 전국 최초 시행인 만큼 향후 운용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이를 계기로 다른 지자체 역시 기후보험 도입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기후보험 도입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환경부는 4월 ‘지구의 날(4월22일)’을 맞아 손해보험협회·한국환경연구원·보험연구원과 함께 ‘기후보험 활성화’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제도적 기반 마련에 나섰다.
류현주 기자 ryuryu@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