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5년 유학을 위해 호주에 정착한 옥상두(68) 씨는 지난해 한국으로의 ‘역이민’을 결심했다. 호주 지역의회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할 만큼 현지 생활에 적응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노후는 고향에서 보내고 싶다’는 바람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부산과 경주·동해 등 전국을 여행하며 고심한 끝에 새 터전으로 강원 원주시를 선택했다. 옥 씨는 “주변에도 호주 연금을 받으며 한국에서 인생 후반기를 보내려는 교민이 많다”고 전했다.
인구 감소에 직면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자구책으로 재외동포의 국내 재정착을 유도하고 있다.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역이민자 시니어타운을 조성하는 등 귀국을 고민하는 교민들을 겨냥한 유치전에 나섰다.
10일 재외동포청에 따르면 해외 이민 이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역이민자(영주귀국자)는 지난해 기준 1566명이다. 이 중 60대 이상은 881명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56.3%)을 차지했다. 만 65세 이상 재외동포는 국적 회복을 통해 복수국적을 취득할 수도 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뿐만 아니라 의료·문화 인프라가 잘 갖춰진 한국에서 노후를 맞으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옥 씨는 “호주에서는 임플란트 하나에 300만 원이 넘지만 한국은 훨씬 저렴해 만족스럽다”며 “요양원에 가도 음식과 언어가 익숙해 한결 편하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이러한 역이민 수요를 지역 인구 확대로 연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경남도는 시군별 ‘한 달 살기’ 등 장기체류 프로그램에서 재외동포를 우선 선발한다. 지역의 일상을 경험하게 해 정착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취지다. 참가자는 생활비를 지원받는 대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체험기를 게시해야 한다. 경남도청 관계자는 “한국관광공사 해외 지사를 통해 프로그램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며 “재외동포가 입국하면 공항에서 숙소까지 픽업 서비스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강원 원주시는 지난달 26일부터 호주 재외국민을 초청해 ‘원주에서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참가자 20명은 보름 동안 치악산·역사박물관 등 지역 명소를 둘러보며 문화를 체험했다. 상지대와의 협력으로 역이민 신청 절차, 자산·건강 관리 등을 주제로 한 무료 강의도 마련됐다. 원영철 씨는 “‘원주 원 씨’로서 고향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며 “교민들은 한국에 오려 해도 막막함이 큰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줘 도움이 됐다”고 웃었다.
해외로 직접 교민들을 찾아 지자체를 홍보하기도 한다. 충남도는 미국·일본·베트남 등 7개국에 충남 해외 사무소를 두고 교민들과 꾸준히 접촉하고 있다. 5월 충남도 관계자들은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해 ‘포근한 삶이 기다리는 역이민의 최적지’라는 주제로 내포신도시 설명회를 열었다. 충남개발공사와 함께 신도시 미분양 주택을 재외동포에 공급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역이민자 시니어타운까지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지역 활성화 측면에서 역이민자 유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단순 ‘주거지 이전’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들이 한국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 경남 진주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교민 김이사벨 씨는 “오랜만에 고향에서 자연을 즐기며 행복했다”면서도 “이주하게 되면 연고가 없는 상황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전했다.
법무부는 7월 전국 비영리단체 23곳을 동포체류지원센터로 지정했다. 센터는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취업·주거·의료 등 생활 정보를 안내하고 입국 초기 적응 교육 및 고충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개별적인 인구정책이 아닌 ‘단지형’ 접근이 필요하다”며 “주거지 제공에 그치지 않고 의료 접근성, 재취업 지원, 교류 네트워크 등 정주 환경을 함께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