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에 10만원 남짓이면 살 수 있던 32GB 메모리가 50만원이 됐다. 메모리는 시가로 움직이는 ‘산업의 쌀’이라지만 너무한 수준이다.
인공지능(AI) 그래픽처리장치(GPU)용 HBM과 PC용 DDR, 게임 GPU용 GDDR, 스마트폰용 LPDDR 모두 결국 공정과 세대만 다를 뿐 쌀, 그러니까 같은 공장의 웨이퍼를 잘라 만든다. 수익성 좋은 HBM을 떡이라 치면 그 쫄깃함에 맞는 쌀을 고르는 것처럼 최신 공정 대신 안정적인 이전 공정 웨이퍼를 잘라 넣기도 한다.
‘비닝’이라고 하여 수확물 품질 선별도 한다. 상품과 하품을 나누는데, 소매시장의 메모리 유통물량은 하품, 하지만 맛에는 이상 없는 ‘못난이’인 경우가 많다.
이처럼 맞는 쌀을 고를 뿐, 결국 수확한 쌀로 밥을 짓느냐 떡을 만드느냐의 차이다. 그런데 이 산업의 쌀을 누가 갑자기 창고째 내놓으라 한다면 동네 맛집도, 급식실도 밥걱정으로 난리가 날 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떡이라면 사실상 엔비디아가 전부였다. GPU 수요 대란에도 메모리 가격이 요동치지 않았던 건 엔비디아만 사면 그 안에 메모리가 들어 있어서다. GPU 품귀는 TSMC의 생산 역량이 병목이었다. 아무리 많이 팔고 싶어도, GPU 생산량은 고정돼 있다. GPU만큼 메모리가 팔렸다.
엔비디아는 만석꾼들로부터 몇년 치를 밭떼기로 사가는 대표적 큰 손이다. HBM이란 떡은 아니어도 애플처럼 다른 메모리를 엄청나게 팔아 재끼는 큰 손도 있다. 가격은 대부분 이들 큰손이 결정해왔다. 이 수요에 맞춰 농사를 짓고, 그 약속 물량이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준다.
그런데 다른 큰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AI 탓이다. 예컨대 구글의 텐서처리장치(TPU)처럼 엔비디아가 아닌 떡 전문점들에도 손님이 몰린다는 풍문이 들렸다. 쌀이 모자랄지 모른다는 풍문은 쉽게 퍼진다. 2025년 내내 그 조짐이 벌어지고 있었다. 장기 계약이 아닌 소비자용 도소매시장에 풀리는 유통량도 일단 잡히는 대로 쟁여두려는 수요가 생겨났다. 재난 뉴스에 마트 휴지가 동나는 식이다.
기름을 붇는 일도 벌어졌다. 오픈AI가 지난가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로부터 월 90만장의 웨이퍼를 사가겠다고 선언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입도선매 매점매석하겠다는 심보인데, SK와 삼성의 현재 생산 역량의 반 이상, 전 세계 생산량의 40% 규모다. 갑자기 튀어나온 이 큰손은 이쯤 되면 경쟁자를 굶기겠다는 것 같으니 그 속내도, 지불 능력도 궁금하다.
AI는 이처럼 세계를 교란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혼돈이 언제까지 지속할지다. 거꾸로 혼돈은 어떻게 풀릴지 생각해보자. 우선 공급을 늘리는 법이 있다. 메이저 3사 모두 설비 증설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가시적 효과는 최소 1년 이상 걸릴 것이다.
하품의 공급이 대폭 늘 수도 있다. 최근 중국 창신메모리(CXMT)에 공정을 빼돌린 삼성전자 출신들이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그 덕인지 어느새 세계 4위다. 품질 문제 및 무역 마찰로 큰손과 거래는 못 트고 있지만, 하품 유통 시장에 스며들며 가격을 잡아줄 수 있다. 또 하나는 수요가 줄어드는 경우다. AI 버블이 터지는 것이다.
그 어느 쪽이든 이 사태는 1~2년 안에 끝날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1~2년 이상 이어질 것 같지도 않다. 급한 마음은 알지만 버텨 보는 것도 좋다. 제약은 때로 혁신의 조건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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