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가 5월22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개최한 ‘제21대 대선 농정 비전 발표회’에는 수백명의 농민이 모였다. 농번기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 국정 최고책임자의 농정 비전을 듣기 위해 서울로 향한 것이다.
수시간 뒤 농민들은 실망스러운 얼굴로 행사장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날 비전 발표회에 대통령선거 후보가 한명도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선후보들의 불참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번 대선은 탄핵으로 인해 치러지는 조기 대선인 만큼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5월12일부터 6월2일까지로 매우 촉박했다. 총 22일간 지역 유세, 공식 TV토론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각 당 후보가 대선 관련 모든 행사에 참여하는 데 무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과 마찬가지로 조기 대선을 치렀던 제19대 대선 당시에는 한농연이 개최한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 주요 대선주자 5명이 모두 참석했다. 이 단체가 제15대 대선부터 후보 초청 행사를 주최한 이래로 후보가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세세한 농업분야 공약을 농민들이 직접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이번 발표회에 걸린 200만 농민의 기대감도 컸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행사가 끝나고 자리를 뜨는 농민들에게선 “후보들이 이렇게 농업에 관심이 없을지 몰랐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후보자 대신 정당 대표자의 입을 통해서라도 후보의 농정 비전을 전해 들었다면 이 정도로 아쉬움이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행사는 각 당의 주요 농정공약을 듣는 1부와 후보자의 농정 비전을 들어보는 2부로 구성됐다. 하지만 대선후보를 대신해 참석한 정당 대표자들은 2부 행사에서 1부와 유사하게 농정공약을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
지난해 농업소득은 또다시 1000만원대 밑으로 떨어졌으며, 고령화로 농업·농촌의 소멸은 가시화되고 있다. 기후위기가 심화하며 전세계적으로 식량안보 같은 농업의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 이러한 무관심은 역설적이다. 총체적 위기에 처한 농업이 지속가능해지려면 정치권의 지원은 필수다. 농민들이 허탈한 표정을 짓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농업·농촌에 대한 차기 정부의 긴밀한 관심이 절실하다.
이재효 정경부 기자 hyo@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