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이언 매큐언 지음 | 민승남 옮김
문학동네 | 696쪽 | 2만 2000원

매큐언과 삶의 이력 닮은 주인공
“가장 자전적 소설” 언급하기도
회한·고통 속 담담히 버텨낸 생
우아하고 단정한 문체로 그려내
“그건 불면증에 동반된 기억이지 꿈이 아니었다.” 한 남자의 회상으로 시작하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시인 롤런드. 그의 이야기를 따라 약 700쪽 분량의 소설을 모두 읽고 책장을 덮고 나면 어쩐지 독자도 롤런드와 함께 한 생애를 모두 보내버렸다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아내 앨리사가 자신을 찾지 말라는 쪽지를 남기고 떠난다. 이제 태어난 지 7개월이 된 아들 로런스를 품에 안고 롤런드는 왜 아내가 떠났는지 고민한다. 경찰에 아내의 실종 신고를 하지만 오히려 경찰은 롤런드가 아내를 살해하고 거짓 신고를 한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경찰의 모욕적인 취조를 겪고도 아들과 살아낸다.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정부 지원을 받고, 문학적 욕망을 뒤로한 채 엽서에 유행가 같은 연애 이야기를 적어 넣는 일을 한다.

당장의 생활보다 더 큰 문제는 아내가 떠난 뒤로 그가 과거의 일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앨리사의 실종은 과거를 향한 열린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나무가 쓰러지면서 시야가 트이는 것처럼. 이런 드문 순간에 그는 근원을, 선명한 초점을 지닌 빛의 한 지점을, 그를 괴롭히는 모든 것과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떠올린 기억의 주인공은 기숙학교에서 생활하던 열한 살에 만난 피아노 선생 미리엄 코넬이다. 차가운 분위기의 코넬은 롤런드의 마음을 빼앗는다. 두 사람은 비밀스러운 관계를 이어간다. 책의 초반은 어린 롤런드의 이야기가 주인데, 소년의 알 수 없는 욕망과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거부감 등이 성장 소설처럼 그려진다. 이때의 기억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소설의 후반부까지 이어진다.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건들 속에서 롤런드가 살아가는 풍경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롤런드는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살다가 1959년 영국에 정착한다. “2차대전 때 있었던 대대적인 사막전의 잔존물인 그곳(리비아)의 영국 육군 파견대에 대해 아는 영국인은” 별로 없었지만, 롤런드의 아버지는 평생을 군사적 규율에 따라 살아간다. 그런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가한 폭력과 권위주의적인 가정 분위기는 롤런드를 집에서 멀어지게 한다.
아내가 떠난 1986년은 체르노빌에서 원전 사고가 있던 해다. 방사능 낙진의 피해가 전 세계로 퍼질 것이라는 뉴스에 약국과 마트엔 물건이 동난다. 롤런드는 아이에게 깨끗한 물을 주기 위해 생수를 산다. 연락이 끊겼던 아내를 다시 만난 시점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던 1989년이다. “세상이 바야흐로 더 나은 곳이 되어가고” 있던 순간 만나게 된 아내 앨리사는 자신의 문학적 성취를 위해 아들과 남편을 떠났음을 알린다. 앨리사는 아들과 남편을 거부한다.
순식간에 시간이 지난다. 로런스가 성장하고 롤런드는 나이가 든다. 롤런드는 “부모는 자식을 자신에게 의존하는 존재로 여긴다. 그러다 자식이 커서 멀어지기 시작하면 자신도 자식에게 의존했음을 깨닫”는 때가 자신에게 도래했음을 알아차리지만 “앞으로도 이런 미묘한 순간이 찾아올 것이고” 그때마다 자신이 태연한 척 그 순간들을 넘길 것임을 가슴속으로 짐작한다.
부모를 비롯한 이웃의 죽음이 연이어 일어난다. 그리고 다시 미리엄 코넬. 과거의 이야기는 현재에선 성장 소설의 일화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신문 사건 기사에 그려질 만한 소재로 변모해 버린다. 그러나 이 역시 인생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다. 단조로움으로 가득 찬 시간들이 지나가버리고 롤런드는 의자에 앉아 손녀를 바라본다.
회한과 고통이 있었으나 담담하게 버텨낸 누군가의 일생이 우아하고 단정한 문체로 그려져 있는 소설이다. 셰익스피어상, 맨부커상 등을 수상한 영국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 이언 매큐언의 작품인데 작가의 일생과 겹쳐 보이는 부분들이 많아 자전적 소설로도 소개되곤 한다.
이언 매큐언도 롤런드처럼 어린 시절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싱가포르와 독일, 리비아 등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랐다. 기숙학교를 다닌 것도 비슷하다. 다만 작가는 과거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작품에 대해 “가장 자전적인 소설이지만 롤런드는 내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살았을 법한 삶은 살고 있지만, 돌아보면 우리에게는 다른 길로 갈 수 있었던 순간들이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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