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기업 일감부족 호소
무분별한 가격경쟁 만연
적정공사비 확보 어려워
순공사원가 미만 낙찰 배제
적용대상 확대 법안 발의
[정보통신신문=이민규기자]
정보통신공사 등 각종 시설공사의 품질을 확보하고 입찰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무분별한 저가 투찰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대다수 중소 시공업체가 일감 부족으로 원활한 기업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절박한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일단 따고 보자”는 식의 무모한 가격경쟁은 업계 전반의 부실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게 여러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일선 시공업체 및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면 불합리한 저가 투찰의 주된 원인과 유형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재무 상태가 열악하고 자금 여력이 부족한 사업자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낮은 가격을 앞세워 공사를 수주하는 경우다. 일부 기업의 경우 채무 불이행을 염두에 두고 저가 투찰을 감행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저가 투찰의 또 다른 유형은 복잡하게 얽힌 다단계 도급 구조에서 원도급자가 하도급자에게 손실이나 피해를 전가하는 것을 전제로 덤핑 입찰을 하는 경우다. 일반적인 투찰가를 크게 밑도는 낮은 가격으로 공사를 수주한 뒤 하도급을 주는 방식이다. 하도급자에 대해서는 당초 수주한 금액보다 훨씬 더 낮은 가격에 공사를 맡기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무리한 저가 투찰 및 수주로 공사 실행원가가 지나치게 낮아질 경우 많은 부작용이 뒤따르게 된다. 덤핑 입찰에 따른 손실이 원도급업체뿐만 아니라 하도급업체나 장비·자재업체 등으로 전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투찰자가 발주자와의 재협상을 전제로 헐값으로 공사를 수주하는 경우도 있다. 일단 공사를 수주해 착공한 후 발주자에게 설계나 계약 조건의 변경을 요구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저가 투찰을 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단 한 건의 공사가 아쉬운 시공업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저가 투찰을 무조건 비난하기 어렵다는 현실론을 펼치기도 한다. 인력 및 장비 등의 운영비가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상황에서 낮은 가격을 앞세운 공사 수주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무리한 저가 수주에 따른 심각한 부작용을 고려할 때 덤핑 입찰 근절을 위한 다각적인 제어장치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무엇보다 시공업체의 저가 투찰이 잦아지면 발주처에서는 최저가낙찰제 방식으로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을 당연 시하게 된다.
이는 공사 실행원가의 만성적 부족과 공사비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이어진다. 결국 사업을 수주하더라도 적정 공사비 및 이윤 확보에 애를 먹게 되고, 제값을 받고 공사하는 건전한 시장질서를 조성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에 더해 덤핑 입찰에 따른 손실분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고 각종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편법·탈법행위가 늘어나게 된다. 이 뿐만 아니라 부실시공과 각종 사고 발생의 위험을 높이는 것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런 문제점을 없애고 공정 경쟁과 시장 질서의 틀을 정립하기 위해 현행 계약관련 법률에서는 적격심사 대상인 예정가격 100억원 미만 공사에 대해 순공사원가의 100분의 98미만으로 입찰한 자를 낙찰자로 선정하지 못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순공사원가는 재료비와 노무비, 경비, 부가가치세를 합한 것으로 적정공사 수행을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최소한의 공사원가를 보장해 부실공사 및 덤핑입찰을 방지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최근 적격심사 방식으로 입찰 공고된 약 3만 건의 공공공사 중 순공사원가를 보장하는 제도를 통해 낙찰하한율보다 높은 투찰가로 낙찰된 공사의 비중이 약 1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제도의 실효성이 충분히 입증됐으며, 최소한의 공사비를 보장해 주는 안전장치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정성호 의원은 최근 ‘순공사원가 미만 낙찰자 배제 제도’ 적용대상을 300억원 미만 공사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국가계약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법률 개정안 제안이유를 보면 최근 물가 급등 상황에서도 입찰자 수가 적은 실적제한 공사와 고난이도 공사를 제외한 일반공사의 투찰이 낙찰가능 하한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공사의 품질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순공사원가의 98% 미만 투찰 시 낙찰자에서 제외토록 하는 예정가격 기준을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사 물량 부족으로 갈수록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저가 투찰을 완전히 차단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도 “최저가낙찰제를 지양하고 엄격한 입찰자격사전심사(PQ)를 실시하는 등 불합리한 덤핑 입찰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