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지도자 마르완 바르구티
가자지구 휴전2단계 앞두고 국제적 석방 운동
세계 유명 문화계 인사 200여명 석방 요구
수감 중에도 팔레스타인 여론조사에서 ‘1위’
팔레스타인 정파간 합의 이끌어낸 ‘통합의 상징’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단결 우려 석방 거부
‘하마스 무장해제 협상 지렛대로 활용’ 의견도
가족들 “감옥에서 학대로 건강악화 심각”

가자지구 휴전 협상 주요 국면마다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23년째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 중인 팔레스타인 지도자 마르완 바르구티(66)다. 지난 10월10일 발효된 휴전 1단계 합의를 앞두고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바르구티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이스라엘의 반대로 풀려나지 못했다. 하마스가 반환키로 한 이스라엘 인질 시신이 1구만 남아 휴전 2단계로의 진전을 목전에 둔 가운데 다시 한번 국제적으로 바르구티의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대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와 올가 토카르추크, 부커상 수상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와 아룬다티 로이, 드라마 <셜록>의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블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헐크 역할을 맡았던 배우 마크 러팔로 등 전 세계 유명 문화계 인사 200여명이 바르구티의 석방을 요구하는 공개 서한에 서명했다. 영국의 대중음악가 스팅, 중국 출신의 세계적 예술가 아이웨이웨이, 버진 그룹의 회장인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도 서한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바르구티의 계속되는 투옥, 수감 중 겪는 폭력적인 학대, 법적 권리 박탈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유엔과 세계 각국 정부들이 바르구티가 이스라엘 감옥에서 석방되도록 적극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최근 런던 시내 곳곳에는 ‘마르완을 석방하라’(Free Marwan)이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벽화가 등장했다. 이스라엘 점령지 요르단강 서안지구 라말라에도 거대한 공공미술 작품이 등장했다. 바르구티의 가족들은 영국 시민 사회의 지원을 받아 휴전 2단계 협상에서 그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한 국제적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바르구티는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유력한 정치인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를 철폐하고 사회 통합을 가져온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에 비견되며 ‘팔레스타인의 만델라’로 불린다. 서방에서는 팔레스타인을 통합해 국가 수립을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평가한다.
바르구티는 팔레스타인 민중 봉기인 ‘2차 인티파다’(2000~2005)에 관여한 혐의로 2002년 이스라엘군에 체포, 2004년 5건의 종신형과 징역 40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바르구티는 이스라엘 법원이 자신이 재판할 권한을 인정하지 않으며 변호조차 거부했다. 국제의회연맹(IPU)는 당시 바르구티의 재판이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서안지구 출신의 바르구티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를 주도하는 정파 파타의 서안지구 사무총장이자 팔레스타인 입법위원회 의원으로, 고령에다 인기가 없는 마흐무드 아바스 PA 수장의 잠재적 후계자로 여겨지고 있다.
오랜 수감생활에도 불구하고 바르구티는 팔레스타인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1위를 차지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지난 10월 팔레스타인정책여론조사연구소(PCPSR)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바르구티는 49%를 득표, 하마스의 수장 칼리드 미샬(36%)과 PA 수장 아바스(13%)를 앞지르며 선두를 차지했다.

바르구티의 인기 요인은 ‘팔레스타인의 만델라’라는 별명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의 대가로 오랜 수감생활을 치른 ‘희생의 아이콘’, 부패와 무능으로 비판받는 PA 지도부에 염증을 느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개혁의 아이콘’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 정파로 분열된 팔레스타인을 한데 모을 수 있는 ‘통합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27년간 수감생활을 하며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고, 감옥에서 ‘국민 지도자’로 자리매김한 만델라와 닮은 꼴이다. 2002년 만델라는 “바르구티에게 일어난 일은 나에게 일어난 일과 똑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르구티는 2006년 감옥에서 파타, 하마스, 이슬람성전 등 팔레스타인 5개 정파 인사들이 참여한 ‘수감자 문서’를 주도하며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방향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 정치력을 드러냈다. 이는 하마스와 파타 등이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방향에 합의한 최초의 사례였다. 2017년에는 이스라엘 교도소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1500명 넘는 수감자들과 40일간 단식 투쟁을 주도하기도 했다.
파타의 무장조직 탄짐을 이끌기도 한 바르구티는 두 국가 해법을 옹호하면서도 무장투쟁을 지지한다는 면에서 하마스 지지세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바르구티는 수감 전인 2002년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안보를 원한다면, 점령을 끝내라’는 글에서 “나는 테러리스트도 평화주의자도 아니다. 팔레스타인 거리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라며 “이스라엘 민간인을 겨냥한 공격에는 강력히 반대하지만, 스스로를 보호하며 이스라엘 점령에 저항하고, 자유를 위해 싸울 권리를 보유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바르구티의 인기 요인은 역설적으로 그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바르구티가 팔레스타인의 강력한 차기 지도자로 호명되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그를 석방할 경우 분열된 팔레스타인이 통합돼 독립 국가 수립 움직임이 추진력을 얻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스라엘 인질과 팔레스타인 수감자를 교환하는 1단계 휴전협상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바르구티의 석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이스라엘의 반대로 끝내 석방되지 못했다.
바르구티의 아들 아랍 바르구티는 알자지라에 “아버지는 자신이 팔레스타인 국민과 정치 세력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보증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바로 그 점이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바르구티 석방을 막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하마스 무장해제를 위한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서 근무했던 윌리엄 키넌 중동 정보분석가는 “알카에다 출신의 아메드 알샤라 시리아 임시 대통령을 외교 파트너로 인정한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안정을 위해서라면 바르구티를 인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하마스 무장해제를 조건으로 이스라엘이 바르구티 석방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바르구티가 수감 중 심한 학대에 시달려 목숨이 위태롭다는 우려도 석방 운동의 추진력이 되고 있다. 2023년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바르구티의 가족과 변호사는 그가 지속적으로 심한 구타를 당했다고 밝혔으며, 지난 10월 그의 아들 아랍은 바르구티가 교도원에게 집단 폭행 당해 며칠 동안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지난 5일엔 아들 카삼이 페이스북에 “이스라엘 경비병들이 아버지의 갈비뼈와 이를 부러뜨리고, 한쪽 귀를 잘랐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는 글을 게시했다 삭제했다. 이스라엘은 이같은 의혹을 부인했다.
바르구티의 모습은 지난 8월 한차례 공개된 바 있다. 이스라엘 극우 정치인 이타바르 벤그비르 국가안보부 장관이 바르구티의 감방을 찾아가 팔레스타인인을 “쓸어버리겠다”며 조롱하는 영상을 SNS에 올리면서다. 영상 속 바르구티의 모습은 눈에 띄게 수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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