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희망의 불을 지펴라] ①"잃어버린 '삼성 스피릿'을 되찾아라"

2024-10-26

[인터뷰] 유회준 카이스트 AI반도체대학원장

"해보자"는 벤처정신 아랫대에서 사라져

"위기를 똘똘 뭉쳐 뚫고 나가는 힘 있었다"

"지금은 탓만, 반도체는 뼈를 갈아 넣어야"

"예전의 삼성으로 돌아가자, 새 선언 필요"

초격차는 어디 갔을까. 잃어버린 반도체 경쟁력과 주당 5만원대를 맴도는 주가는 삼성전자의 현주소다. 이재용 회장의 취임 2주년을 맞은 삼성전자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대전 카이스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옛날 삼성은 어떤 미션이 주어지면 미친 듯이 달려들어서 해결하는 사람들이었다. 말 그대로 뼈를 갈아 넣어서 문제를 해결했었다. 지금의 위기는 이러한 '삼성 스피릿(spirit)'이 사라지면서 왔다."

삼성전자의 위기는 어디서부터 왔는가. 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되찾아야 할 정신은 무엇인가.

국내 최고의 반도체 석학 중 한 명인 유회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장(교수)은 잃어버린 '삼성 스피릿'에서 삼성의 현재 가장 중요한 문제점을 찾았다.

문제를 발견하면 악착같이 해결하던 삼성의 치열한 정신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평사원뿐 아니라 경영진까지 선대 회장부터 이어진 삼성 특유의 도전 정신을 잃었다는 평가를 내놨다.

유회준 교수는 "(삼성이) 지금은 탓을 많이 한다. 52시간 때문에, 노조 때문에, 업무 칸막이 때문에 그런 것들을 탓만 하지 돌파할 생각을 안한다"며 "옛날에도 문제는 많았지만 똘똘 뭉쳐서 돌파해 나갔다. 지금처럼 비난만 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장(부회장)은 올해 3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반성문을 냈다. 전 부회장은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초격차' 기술 경쟁력을 잃었다는 자인으로 읽혔다. 유 교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뒤처진 이유도 '삼성 스피릿'에서 찾았다.

유 교수는 "(D램에서)자기들보다 더 싸게 더 잘 만드는 곳은 없다, 불가능하다라는 자부심만 가지고 주변을 보지 못했다"며 "공정을 잘못 선택했다. 과잉 투자했다는 핑계다. 지금은 이상하게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반도체는 뼈를 갈아 넣어야 한다"고 재차 '삼성 스피릿'을 강조했다.

정기태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 23일 "경쟁사 보다 기술력이 뒤쳐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도 유 교수는 일침을 가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뒤떨어진다고 생각은 안한다. 하지만 예전에 삼성은 '초격차'였다. 따라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특히 3세 경영으로 이어지며 '삼성 스피릿'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유 교수는 "삼성은 항상 '열심히 해보자' 하는 벤처 정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아래쪽에서 스피릿이 사라졌다는 것에서 정말 놀랐다"며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 말고 다 바꾸라'는 이야기처럼 항상 위기의식을 불어넣었었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최고 경영진부터 '예전의 삼성으로 돌아가자'라는 새로운 선언을 하고 '삼성은 저력이 있다'라는 메시지를 심어줘야 삼성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음은 유회준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삼성전자는 위기인가

▲위기다. 위기가 어디서 왔다고 보냐면 예전의 '삼성 스피릿'이 사라진 것에서 왔다고 본다. 옛날 삼성은 어떤 미션이 주어지면 미친 듯이 달려들어서 해결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탓을 많이 한다. 예를 들어 주 52시간 또는 노조 또는 기술 유출 때문에 업무 칸막이로 전체 일을 모르게 해 놨다. 그런 것들을 탓만 하지 돌파할 생각을 안 한다. 옛날에도 문제는 매우 많았다. 힘들었다. 하지만 똘똘 뭉쳐서 돌파해 나갔다. 지금처럼 이렇게 비난만 하지 않았다. 그런 스피릿이 사라진 것이 제일 크다고 본다.

-인텔과 삼성전자의 위기가 온 이유가 비슷하지 않나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조금 말을 돌리자면 포드 자동차 회사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만들어 3000불 되는 자동차를 300불로 떨어뜨렸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자동차'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자기보다 더 값싸게 더 좋은 차를 만들 수는 없다' 그런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20년쯤 뒤 그 공장은 문을 닫았다. GM이라는 회사가 세단 차를 만들어내면서다. 자동차가 과시용이 되면서 포드의 옛 디자인이 외면을 받았다. 그런 세월의 흐름을 모르고 자기들은 정말 싸게 잘 만든다는 자부심만 있었다. 그것 때문에 포드 자동차가 문을 닫았다.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바뀐 것을 몰랐다. 인텔하고 달리 삼성은 D램의 별의별 기술을 다 개발해 놨다. HBM도 벌써 했고 그 중에 가장 싸고 가장 질이 좋은 제품을 골랐다. 자기들보다 더 싸게 더 잘 만드는 건 없다, 불가능하다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HBM이 단품에 맞춰놓은 거라 성능이 안 나오는 것이다. 어떻게 푸는지도 알고 있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다.

-인텔의 위기, 삼성에겐 기회인가

▲결국 고객이다. 고객의 신뢰만 있으면 공정 빌드업 하는 게 뭐가 문제나. 인텔은 미국 회사라 그것에 힘입어 고객을 잡아놨을 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힘드니까, 그것을 삼성으로 돌리면 삼성으로써는 이익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지금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다. 옛날처럼 마케팅하는 사람들이 뼈를 갈아 넣지 않고 있나 그런 생각도 든다.

-삼성은 3분기 실적 발표에서 반성문을 냈다. 기술 경쟁력을 복원하겠다고 했는데, 기술 경쟁력을 잃었다는 인정인가. 삼성 연구개발(R&D)에 문제가 있었나

▲제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HBM 기술도 옛날에 다 만들었고 HBM 보다도 더 초창기 기술을 이미 마이크론과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GAA 공정이라든가 트랜지스터 공정들의 다양한 연구를 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런 거를 되살릴 생각을 안 하고 원천 기술이 없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깜짝 놀랐다. R&D의 문제 보다 전체를 다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엔지니어들이 줄어든 것. 또 기술 유출 때문에 단계, 단계, 단계를 잘라놔서 그런 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옛날에는 뼈를 갈아 넣어서 해결했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반성문 다음 내용은 앞으로 치열하게 토론을 하겠다고 했다. 지금은 내부에서 치열한 고민이 없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큰 도전정신이 없다, 보신주의가 팽배하다는 지적이 있다.

▲세상에서 우리보다 더 잘 만들고 싸게 만드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삼성 분들은 항상 '열심히 해보자' 하는 벤처 정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아래쪽에서 스피릿이 사라졌다는 것에서 정말 놀랐다. 윗분들은 그런 스피릿이 있었다. 사실 김기남 회장의 방침이 맞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분은 치열하게 기술을 끝까지 추구하는 분이었다. 다만 외부에 보일 때 너무 차갑고 냉혈한처럼 보이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경계현 사장한테는 부드럽게 하는 것을 강조를 하다 보니 치열하게 테크놀로지컬하게 밀어붙이는 게 좀 미흡했다고 본다. 전영현 부회장은 그 두 면을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힘든 모양이다.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예를 들어 노조라든가 기술 외적인 문제가 너무 많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기술자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PS를 주느냐 마느냐, 노조에 어떻게 대응을 하느냐 이 문제는 기술자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삼성 파운드리, 회복할 수 있을까

▲삼성만 놓고 볼 것이 아니라 TSMC나 세계적인 흐름을 봐야 한다. 삼성이 3나노 공장을 평택에 대규모로 투자한 것이 잘못인가?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러 문제가 있다. 그러면 그냥 뼈를 갈아 넣어서라도 만들어 놨어야 했다. 어려움이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안다. 공정을 잘못 선택했다. 과잉 투자했다는 핑계다. 지금은 이상하게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반도체는 뼈를 갈아 넣어야 한다.

-삼성 파운드리 부사장은 '경쟁사 보다 기술력이 뒤쳐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다른 데에 비해서 뒤떨어진다고 생각은 안 한다. 하지만 예전에 삼성은 '초격차'였다. 더 갈아 넣어서 정말 못 따라오게 해야 한다.

-뼈를 갈아 넣을 인재들이 없는 것 아닌가. 인재 유출 문제도 있는데.

▲그런 것을 막아야 한다. 옛날보다 외부 상황이 더 나쁘다고 생각은 안 한다. 옛날이 정말 안 좋았다. 기술도 뒤쳐졌고 인텔한테 치이고, 일본한테도 치이고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도 뚫고 나가는 힘이 있었다. 지금은 그걸 못하고 있는 것이 차이다.

-의대 선호 현상이 반도체 인재 확보에 영향을 주고 있나

▲대만에서는 반도체가 제일 선망의 직업이다. 반도체를 전공해서 TSMC로 들어가거나 미디어텍에 들어가는 거다. 그래서 예전엔 미국으로 유학을 많이 갔다. 그런데 요즘에는 미국 유학을 안 가고 남아있다고 한다. 이들이 월급을 무지하게 많이 올렸다. 그래서 굳이 실리콘밸리를 안가도 된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삼성이나 하이닉스가 그 정도의 메리트가 있느냐, 의대보다 삼성이나 하이닉스 가면 더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하면 굳이 의대 안간다. 애플에 취직한 학생들 초봉이 5억이다. 미국은 엔지니어 초봉이 5억이니까 굳이 의사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거다. 그런데 여기는 그렇지 않으니까 의사 쪽으로 가는 거다. 아직까지 여파는 적은데,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보고 체계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한다. 엔지니어가 아닌 재무통이 최종 결정권을 가지다 보니 예전처럼 혁신하고 도전하려는 시도가 줄었다는 의견도 있다.

▲위에 있는 사람이 빠삭하게 아는 사람이면 그럴 수가 없다. '다 아는데 너 이거 왜 안해' 그래야 하는데 그것이 없어진 점이 문제다. 결국은 상층부의 스피릿으로 문제로 귀결이 되는데 그분들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거밖에 생각을 못하게 몰입된 상황인 것 같다. 재무통들이 누구를 신경 쓰겠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 말고 다 바꾸라'는 이야기처럼 항상 위기의식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지금 경영진들은 정권에서의 압박을 피해가는 데 역점을 두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반도체 경쟁력 저하에 영향이 있었을까

▲반도체 관련해서는 컨트롤타워가 그렇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도체는 엔지니어들이 열심히 하면 된다. 지금 AI 시대고 챗 GPT의 시대다. 이제 우리가 새로운 틀을 만들어 새롭게 나가야 한다. 미래지향적으로 새로운 틀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노조와 같은 내부 잡음은 영향이 있었을까

▲노조가 시대의 흐름상 어쩔 수 없이 존재해야 한다면 서로 으르렁거리지만 판은 깨지 말자는 협약이 있었으면 좋겠다. 현대차 같은 경우도 이제는 공동 협력체가 됐다. 삼성은 양쪽 다 초보 운전자라고 본다. 그런 체제가 필요한데 삼성은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그 와중에 경쟁력을 잃는 사태는 없었으면 한다. 옛날에는 문제가 터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다 해결해 줬다. 불만이 생겨서 이야기하면 벌써 조치가 나왔다. 그래서 노조를 만들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걸 안 하고 있다. 그러니까 관리에서도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옛날 스피릿이 사라졌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최고 경영자 층부터 '예전의 삼성으로 돌아가자'라는 새로운 선언을 하고 '삼성은 저력이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직원들 대접도 잘해줬으면 좋겠다. 옛날에는 '이렇게 고생하면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대접해 줄게' 그랬다. 그것을 다시 살려야 한다.

-직접 보조금과 같은 정부의 도움도 필요한가

▲보조금 여부가 우리나라에서는 큰 이유 같지 않다. 미국은 해외 기업들을 끌어들이려 보조금을 주는 것이고, 우리나라는 세제 혜택 등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직접 돈을 주는 것은 삼성도 원하지 않을 거다.

-AI 반도체 붐을 타고 SK하이닉스는 패키징을 강조하고 있다.

▲전체 큰 판세를 봐야 한다. 지금 하이닉스는 패키징으로 차별화를 시켰기 때문에 패키징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인텔의 패키징 기술도 사실은 아주 좋다. 그런데 인텔은 두 번 실기를 했다. 첫 번째 실기가 모바일에서의 실기, 두 번째가 AI에서의 실기다. TSMC는 두 번 다 승기를 잡았다. 기회를 놓치느냐 잡느냐의 차이다. 패키징만 보는 것은 너무 지엽적이다. 인텔이 그랬던 것처럼 순식간에 위험해질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HBM에 너무 큰 비중을 두는 것 아닌가

▲하이닉스가 삼성을 능가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단선으로만 가고 있다. 다양한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 또 다른 대안도 연구를 했으면 좋겠다. 시스템도 있고 파운드리도 있는 삼성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하이닉스는 메모리밖에 없다. 메모리는 부침이 옛날부터 아주 심했던 곳이다. 정말 쫄쫄 굶어야 하는 상황도 올 수 있다.

◆유회준 카이스트 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장은

메모리반도체, AI반도체 분야 세계적인 석학이다. 서울대 전자공학 공학사,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벨 커뮤니케이션 리서치 연구원, SK하이닉스 반도체연구소 D램 설계실장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8년부터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 석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카이스트에서 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장, PIM반도체설계연구센터장, IT융합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7대 반도체공학회장으로 선출됐다. 1996년 유 교수가 집필한 'DRAM의 설계'라는 책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기술자들의 필독서다.

syu@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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