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2023년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상위 10% 가구의 평균 주택자산 가액은 12억5500만원이고 하위 10%는 310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이 집값 상승으로 자산 양극화를 염려하고 있다.
지난 5일 국토교통부는 서울 서초구 서리풀 지구를 비롯한 의왕·고양·의정부에 5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과연 거기에 지어지는 집들은 내 소득으로 마련할 수 있는 가격일까’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공급을 늘려도 중산층이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집값이 높다면, 고소득층만 주택을 통한 자산 형성의 기회를 얻게 된다. 주택 자산 양극화는 피할 길이 없다. 국가의 미래를 내다볼 때 자산 양극화는 필연적으로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된다. 젊은이들은 아이를 낳지 않고, 사회는 불안정해진다.
중산층이 부담 가능한 집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실시된 케이토 인스티튜트(Cato Institute)의 2022년 주택 부담 가능성 전국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3%가 자기 지역에서 집을 살 여유가 없다고 답했고, 69%는 자신의 자녀 세대가 집을 살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소득 집단의 한가운데인 ‘중위(中位)소득’의 2배를 버는 가구도 주택을 살 여유가 없다.
미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미국은 나름 저렴한 중위가격 주택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공급을 저해하는 규제들을 철폐하고 있다. 미국은 지역사회에 중산층이 자기 소득으로 충분히 구매할 수 있는 주택이 공급되도록 하는 ‘포용주택(Inclusionary Housing)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 31개 주와 워싱턴DC에서 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택 단지를 개발할 때 포용주택 프로그램에 참여한 개발업체는 주택을 시세대로 판매하지만, 정부로부터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고 전체 주택 중 10~20%의 주택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다. 말하자면 100채를 지을 곳에 150채를 짓고 그중 30채를 지역 중위소득 60~120% 가구에 판매하는 것이다.
일리노이주 네이퍼빌은 포용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시행했다.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는 건설사에는 개발 시 주차 요건, 공용 구역 요건, 부지 면적 제한 및 건물 높이 제한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는 2010년 개발업체와 협력하여 전체 주택 중 20%를 지역 중위소득의 50~120%인 가구가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주택 공급 늘리려 규제 철폐
미국의 지방자치단체는 자기 지역에서 집값이 빠르게 상승하면, 조례에 근거하여 위원회를 소집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위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자기 지역에 주택단지를 개발하는 건설사에 어떤 인센티브를 줘야 1만 가구였던 건축 예정 물량이 1만4000가구가 될 수 있는지를 논의한다. 그리고 그중 2000여 가구는 30% 싼 가격으로 지역의 청년, 신혼부부, 중산층에 공급할 수 있을지를 건설사와 협상한다.
우리는 왜 중산층이 구매 가능한 집, 중위가격 주택 공급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이제는 가격을 이야기해야 한다. 가격을 낮추는 최선의 방책은 원가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치솟은 건설 자잿값이 낮아질 수 없다면, 다른 비용을 줄여야 한다. 규제를 완화하고, 같은 면적에 더 많은 주택을 지을 수 있게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서리풀 지역의 인근 아파트 가격은 신축기준 3.3㎡당 6500만원 수준이고, 경기도 고양시는 신축기준으로 3.3㎡당 3300만원 정도다. 시세대로면 서리풀은 20평형대 기준으로 13억원 수준, 고양시는 6억6000만원 정도가 될 것이다. 서리풀지역 2만 가구 중 장기전세주택으로 공급되는 1만 가구를 제외한 나머지 1만 가구에 포용주택을 적용해 보자. 용적률 인센티브로 1만2000가구를 짓도록 하고 그중 10~20%인 1200~2400가구는 30% 낮은 가격, 즉 9억원 정도에 공급하는 것이다.
이 1200~2400가구에 대해 ‘로또’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서리풀 지구에 분양가상한제를 실시해 분양하면 포용주택과 값이 비슷하거나 낮은 1만 가구의 로또가 나올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공급된 강남 세곡 보금자리 주택은 평균 50대1의 청약 경쟁률을 보였다. 이 정도 수요층이 무주택 지위를 유지하며 구매를 미루게 되면, 전·월세 가격이 오르는 등 주택 시장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대지 지분 낮춰 가격 상승 제한
누군가가 로또에 당첨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택들이 계속 저렴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그래야 뒤이어 오는 중산층이 저렴하게 재구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유지하는 방법은, 해당 아파트의 대지 지분을 정상 가격에 매매되는 아파트들보다 일정 수준 낮추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해당 아파트들은 가격이 급상승할 때 상대적으로 덜 상승하게 된다. 게다가 포용주택은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강남권 로또 청약처럼 현금 부자에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 전체가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서울 25개 구 각각 자신들 지역에서 중위소득의 120% 이하 가구들이 그들의 월 소득으로 구매 가능한 주택들이 사라지고 있다면, 즉 마구잡이로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면 대책을 세워야 한다. 대책을 세울 것을 강제하는 조례를 시 의회와 구 의회에서 입안해야 한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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