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 13대 대선은 6월 항쟁으로 부활한 직선제로 실시됐다. 3김(金)이 분열해 지역 감정이 극렬하게 표출됐다. 노태우(민정당)는 대구·경북, 김영삼(민주당)은 부산·경남, 김대중(평민당)은 호남, 김종필(공화당)은 충청이 지역 기반이었다. 이들이 다른 지역 유세를 가면 아수라장이 되곤 했다. 그해 11월14일 김영삼의 광주역 유세는 시위로 중단됐다. 다음날 김대중의 대구 두류공원 유세도 난장판이었다. 김대중은 “여기서 지면 민주주의는 절대로 안 된다”며 34분간 연단에서 연설을 강행했다. 경호원들이 김대중을 향해 날아드는 돌, 유리병, 계란을 우산과 가방으로 막았다.
그로부터 2주 뒤인 11월29일 노태우가 광주역 유세에 나섰다. 시민들은 광주 학살 가해자인 노태우가 나타나자 돌멩이와 막대기를 던졌다. 노태우는 방탄유리를 든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연단에 올랐고, 연설 내내 방탄유리로 보호막을 쳤다. 노태우는 책임자 처벌이나 진상규명 약속 없이 ‘무조건 화합’을 외쳤다. 당시 광주의 마음을 얻기 위한 방문이 아니라 봉변당하는 장면을 연출해 다른 지역 지지를 얻으려는 것이란 해석이 많았다.
21대 대선에서 방탄유리가 다시 등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19일 서울 유세부터 연단 좌·우·앞 3면에 가로세로 1m 크기의 방탄유리막을 설치했다. 이 후보는 지난주부턴 방탄복도 입고 있다. 민주당이 ‘러시아제 저격용 소총 반입’ 제보가 입수됐다며 경호를 강화한 것이다. 이 후보가 지난해 1월 부산에서 칼 테러를 당했던 만큼, ‘저격 테러’ 우려도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이 후보의 방탄유리막 유세를 “정치 쇼”라고 했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작금의 정치 현실을 보면 ‘방탄 유세’가 호들갑을 떤다고 볼 수만도 없다. 신동욱 대변인단장은 “이 후보 스스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본인이 지은 죄가 많아서 그럴 것”이라고 했는데, 이런 막말이 폭력·테러의 위험성을 키울 수 있다. 김문수 후보는 “내가 총 맞을 일 있으면 맞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테러를 자극해선 안 된다. 대통령을 결정하는 것은 총·칼이 아니다. 유권자의 투표용지가 차기 대통령을 만들고 민심을 배반한 후보와 정당을 심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