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시대] '이념' 대신 '현실'...탈(脫)진영 외교안보 정책 '실용 외교'

2025-06-07

'주어진 현실' 인정하고 해법 찾는 외교정책 지향

한미일 협력, 제3자변제 등 '기존 틀' 내 변화 추구

'당파성 탈피' 주장하는 위성락 안보실장이 핵심

'소수파' 위 실장과 '전통적 진보세력' 협업이 관건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이재명 정부의 외교 슬로건은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다. 이념이나 가치보다 국가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한다는 의미다. 전임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와 다르지만, 전통적인 민주당의 외교 기조와도 다르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 내내 '좌와 우를 아우르는 정책'을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중도 유권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우클릭 전략'이라고 평가했지만 그의 공약이나 선거 캠프에 포진했던 참모들의 면면은 확실히 기존 민주당의 색깔과 차이가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취임사에서 "진보의 문제도, 보수의 문제도 없다"면서 "낡은 이념은 이제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자"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통해 글로벌 경제·안보환경 대전환의 위기를 국익 극대화의 기회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실용 외교의 출발점 '현실 인정'

이재명의 실용 외교는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한다.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을 인정하고 그것을 토대로 현실에 맞는 해법을 찾는 '외교의 본령'에 충실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굳건한 한·미 동맹을 토대로 한·미·일 협력을 다지고 주변국 관계도 국익과 실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레거시'로 여겨지는 한·미·일 협력 강화의 기조를 허물지 않고 이어 가겠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윤석열 정부의 외교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야당 대표 시절 이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의 한·미 동맹 최우선주의를 비판했다. 그의 주장은 한·미 동맹 강화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대미 외교에 따른 중국·러시아 등의 반발과 같은 반작용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재명 정부는 기존의 한·미, 한·미·일 협력 구도를 유지하면서 과속을 방지하고 중·러의 반발을 최소화해 외교적 운신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판결 해법으로 내놓은 '제3자 변제'도 폐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 정부의 제3자 변제는 실행 과정과 수순이 잘못됐기 때문에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이재명 정부는 제3자 변제가 한·일 관계의 최대 난제인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원로 외교관은 "전임자의 잘못된 정책은 비판하는 것으로 그쳐야지 이미 실행이 된 것을 뒤엎거나 폐기하는 것은 외교가 아니다"라며 "만일 제3자 변제를 폐기하면 새로운 해법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외교적으로 커다란 난제를 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접근법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한·일 위안부 합의,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등을 검증하고 무력화시키려 했던 것과 다르다. 이를 두고 '학습 효과'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하지만, 보수 정부와 다르고 민주당의 '적자'도 아닌 이 대통령의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성향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성패의 열쇠 쥔 '위성락 안보실장'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 기조를 정립한 인물은 지난 4일 대통령실 외교안보실장에 임명된 위성락 전 의원이다. 정통 외교관 출신인 위 실장은 동유럽 과장, 북미국장, 주미 공사,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주러시아 대사 등을 역임했다. '국내 최고의 외교 전략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위 실장은 2022년 대선 때 '이념에서 한 발 벗어난 실용 외교'의 개념을 제시해 이 대통령을 사로잡았다.

위 실장은 민주당의 전통적인 외교안보 기조와 약간 다른 시각을 가졌다. 보수층에서 "민주당이 집권해도 위성락이 외교 참모이기 때문에 안심"이라는 말을 했을 정도다.

그는 평소에도 외교안보 사안에 초당파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한국은 단순한 전략적 모호성에 안주하지 말고 외교적으로 분명한 '한국형 좌표'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 대통령이 취임 첫날 위 실장을 외교안보 총책에 임명한 것은 '반미·친중'이라는 미국의 의구심을 줄이는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위 실장의 존재를 눈여겨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 실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 외교를 지휘할 적임자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위 실장의 관점과 접근법이 민주당 내에서 대세가 아니라는 점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위 실장에게 강한 신뢰감을 갖고 있지만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를 거쳐 민주당 내에 뿌리를 내린 '진보적 외교안보 세력'은 매우 강력하다.

민주당 내 사정에 정통한 한 외교 참모는 "위 실장이 민주당의 전통적 외교안보 기조를 신념처럼 지지하는 당내 세력들과 조화롭게 협업할 수 있을지 여부에 이재명 실용 외교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opento@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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