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문화부는 장제스 동상을 없애는데···한국에선 뉴라이트에 의해 부활

2024-10-07

“장제스 동상은 권위주의의 상징, 목표는 개인숭배의 근절.”

대만 문화부는 최근 장제스 전 총통 동상 철거를 추진하는 이유에 대한 경향신문의 서면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그의 이름을 딴 거대한 기념관과 그 앞에서 엄숙하게 행해지는 의장대 교대식, 대만 전역에 설치된 수많은 동상이 막강한 그의 위세를 상징했지만 이제는 구시대의 잔재로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국의 전직 대통령 동상 57개 중 84%가 2009년 이후 지어졌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동상 3개가 지어졌고 9개의 동상 건립이 더 추진 중이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이 대부분이다. 주변국과의 비교, 조형적 특징, 역사적 배경을 종합하면 동상 건립은 특정인의 우상화와 권위주의 확산을 의도한다. 일각에서는 동상 건립 열풍을 윤석열 정부에서 뉴라이트의 부활과 결부시키기도 한다. 관련 법이나 조례가 미비한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마저 부재한 동상 건립은 이데올로기 대결의 최전선이 되고 있다.

대만 문화부에 따르면 장제스 동상 철거 등의 조치는 급작스럽게 이뤄진 것이 아니다. 2016년 민주진보당(민진당)으로 대만의 정권이 교체 이후 실시되고 있는 권위주의 독재 청산, 진실 복원 계획의 일환이다. 대만 문화부는 경향신문에 보낸 답변서에서 “2018년 5월 변혁정의촉진위원회를 설치하고 진상규명, 권위주의 상징물 처분 등을 수행하고 있다”며 “문화부는 현 단계에서 목표를 개인숭배·권위주의 숭배 근절로 삼고 중정기념당 개조를 추진한다. 2024년 7월15일부터 의장대 근무(교대식)를 조정해 중정기념당 밖에서 실시하도록 국방부에 요청한 것은 장제스 권위주의의 상징을 제거하는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밝혔다. 신격화된 장제스의 과오를 올바로 기억해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이루자는 취지다.

장제스는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해 대만으로 건너온 뒤 1975년 87세로 사망할 때까지 28년간 총통으로 독재정치를 했다. 1927년 4월12일 상하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민중봉기를 유혈진압한 1947년 2·28사건의 배후로 지목된다. 장제스 집권 기간 내내 대만은 계엄 상태였는데 반공을 내걸고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숙청과 박해를 가했다. 중정기념당은 홈페이지에 이같은 내용과 함께 대만 사회가 권위주의를 해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를 기재했다. 대만 문화부는 장제스 동상에 대해 “권위주의 통치자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지도자(수령) 숭배를 지속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됐다”며 “즉 권위주의의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동상은 왜 권위주의의 상징으로 기능할까. 동상은 조형적 특징만으로도 우상화 목적을 띤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기념조형물을 연구한 조은정 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초빙교수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일단 크기를 엄청나게 크게 만들지 않나”라며 “로마 황제 조각 같은 경우에도 크게 만들었는데 권력을 가시화하는 데 조각에서는 크기가 중요하게 본다”고 말했다. 실제 인물보다 큰 동상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위엄과 권위를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의 동상에는 대상을 신성하게 표현할 때 쓰는 조각기법도 가미됐다. 조 교수는 “남산에 있었던 이승만 동상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그 앞의 향로”라며 “향로는 그 안에서 향을 피우고 예배 행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8면의 동상 기단은 불상, 승탑 등에서 고급 건축물을 표현하는 기법을 차용했다. 8정도(깨달음을 위한 8가지 실천 덕목) 등에서 알 수 있듯 불교에서 8은 신성한 숫자다. 조 교수는 불교조각 기법이 사용된 이유에 대해 “그 시대 분들은 지금보다 불교에 친숙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 동상의 또 다른 특징은 대체로 두루마기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조 교수가 분석한 당시 사진자료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취임식 때를 제외하곤 공식석상에서 두루마기를 거의 입지 않았다. 조 교수는 “전통적인 모습으로 표현해 정통성을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취임식 때 선서를 읽는 사진에는 옷고름이 없는데 동상에서는 옷고름을 휘날리고 있다. 시각적으로 옷고름이 휘날리는 게 더 멋지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동상이 설치되는 장소에서도 우상화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대통령 동상 대부분은 공공장소에 위치해 있다. 남산, 탑골공원, 교통부 광장(지금의 서울역 인근 추정) 등에 세워진 이 전 대통령 동상이 대표적이다. 조 교수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을 선택한 것”이라며 “남산의 경우 우리나라의 성소였던 곳이었고, 일본은 거기에 신궁을 만들었는데 동상을 놓으면서 그 권력을 이양받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3·1운동의 발상지인 탑골공원에 세워진 동상은 독립운동가로서 이 전 대통령의 모습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전 대통령이 동상을 통한 우상화로 장기집권을 꾀했다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후 동상 건립은 실정과 부패를 감추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한국학과 교수는 경향신문과 서면 인터뷰에서 “(동상이 본격적으로 건립된) 2010년대의 경우 2017년까지 보수 정권들이 집권했는데 투표자들의 경제 성장 등에 대한 열망에 정권은 사실 부응할 수 없었다”며 “일련의 실패, 실정, 부패 등을 덮어두고, 박정희 시대의 성장에 대한 향수와 이승만 시대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다시 내세워보려는 목적으로 동상을 건립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동상 건립이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박정희를 경제성장 신화를 이뤄낸 지도자로만 미화하는 뉴라이트의 태동과 무관치 않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통령 동상은 뉴라이트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2000년대 중반 이후 집중적으로 지어졌다. 박 교수는 “뉴라이트가 또 정책적으로 개입한 것이 박근혜 정권 시절 국정 한국사 교과서”라며 일련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뉴라이트의 이승만·박정희 미화가 동상 건립, 국정 교과서 논란 등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 동안 1건에 불과했던 이승만·박정희 동상 건립이 윤석열 정부 들어 늘어난 것도 뉴라이트의 부활과 연결 지었다. 박 교수는 “윤석열 정부 내 뉴라이트 출신 인사 논란과 전직 대통령 동상 건립의 연관성은 분명하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권력을 갖게 된 뉴라이트들은 기본적으로 애국주의적 사관을 내세운다”고 말했다. 그는 “노르웨이에서는 전직 대통령 동상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국민적 합의가 구축된 문화인에 대한 동상은 많은 편”이라며 “요즘 러시아에서 스탈린의 동상 건립이 곳곳에서 보도되는데 한국에서의 움직임들은 차라리 타국 독재 정권과 비교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동상 건립은 정치적 의도가 분명함에도 일단 추진되면 저지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규제할 법적 근거나 사회적 합의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2014년 국민권익위원회는 대통령 동상을 포함한 공공조형물이 주민 의견 수렴 등 절차를 생략하고 무분별하게 건립되는 점을 파악하고 지자체에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당시 전국 243개 지자체 중 106개 지자체가 관련 조례를 미지정했다.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권익위 답변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25개 지자체는 여전히 관련 조례가 없다.

조례가 있다 하더라도 지역 의회 다수당에 의해 동상 건립 여부가 쉽게 좌우된다. 지난 5월2일 대구시의회는 대구시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기념사업 등을 추진할 수 있게 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더불어민주당 육정미 시의원이 동상 건립의 부당성을 제기하는 등 반대토론에 나섰지만 의결을 막지는 못했다. 관련 예산 14억5000만원을 포함한 추가경정예산안도 이날 대구시의회에서 의결됐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지난달 5일 국회에서 열린 ‘박정희 동상 건립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 “2017년 이후부터 서울시에서는 서울시장이라 할지라도 자의적으로 공공영역에 조형물을 세우는 것을 견제해야 되겠다고 해서 서울시 공공미술심의위원회를 만들었다”며 “이 위원회가 마포구 박정희기념관 안에 박정희 동상 세우는 것을 막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지금은 심의위원 대부분이 서울시장이 임명하다 보니 아마 막기 어려울 것”이라며 “동상 건립을 막기 위해서는 (조례 수준이 아니라) 관련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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