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사회주택] 유럽 성공모델 들여왔는데…한국은 왜 안 될까

2025-05-15

[비즈한국] 공공기관이 토지를 제공하고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사회주택’ 사업이 도입된 지 어느덧 10년을 맞았다. 주거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시작됐지만, 오히려 전세사기 등 피해에 더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주택은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민간사업자가 위탁운영을 맡는다. 이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이 반복된다. 비즈한국은 10년을 맞은 사회주택의 문제점과 제도적 한계를 짚고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한다.

버스에서 내려 가파른 언덕을 한참 올라가자 오래된 주택 사이로 유럽풍 외관의 세련된 빌라가 눈에 들어왔다. 깔끔한 디자인과 쾌적한 내부 공간. 서울에 있는 ‘사회주택’이다. 집 안에서 보면 완벽하다. 하지만 밖에 나가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회주택이 대부분 지하철에서 너무 멀거나 언덕이거나 구석진 곳에 있는 탓이다.

서울시 관악구 사회주택 인근의 한 부동산중개사는 시세보다 사회주택이 저렴하지 않으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저 꼭대기에 있는 거 말하는 거죠? 저기에 있으면 원래 저렴한 게 시세예요.”

사회주택 운영사는 비싼 토지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 상대적으로 저렴한 입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건축 비용도 대부분 대출에 의존한다. 성북구 한 사회주택에 거주하는 A 씨는 “월세가 저렴하고 집 상태도 좋지만, 대부분 구석진 곳에 있다. 온라인 지도에 표시가 안 되는 곳도 있다. 지금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집은 보증금이 저렴한 편이지만, 억 단위로 보증금을 받는 사회주택도 있었다”고 말했다.

뜻하지 않은 전세사기 위험에 낙후된 입지까지, 서울의 사회주택은 왜 이런 위기에 빠졌을까? 사회주택 운영자 B 씨는 국내에 사회주택이 처음 보급될 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대부분 사회주택에 거주한다.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됐다. 반면 한국은 주거 공간을 얻기 위해 평생을 일해야 한다. 유럽은 주거를 고민하지 않고 안전한 공간에 살고 있다. 한국도 이렇게 가야 한다는 취지로 유럽의 모델을 가져왔다.”

실제로 2024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 서울의 PIR(소득대비 주택가격 배율) 지수는 24.9로 OECD 국가 1위다. 약 25년간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소득을 모아야 주택을 구매할 수 있다는 의미다.

유럽의 사회주택 비율은 한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 네덜란드,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은 전체 주택의 20% 이상이 사회임대주택이 차지한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사회주택의 비율은 네덜란드 34.1%, 오스트리아 23.6%, 덴마크 21.3%, 영국 16.4%에 달한다. 한국은 8.9%로 평균 7.1%보다 높지만, 주요 유럽국가보다는 낮은 편이다.

이렇게 사회주택 비율이 높은 유럽 국가에서는 집을 알아볼 때 일반 주택보다 사회주택을 먼저 찾는다. 여기에는 예술적인 건물과 저렴한 가격뿐 아니라 사회주택과 일반주택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까닭도 있다.

유럽 역시 대부분 주택협회 등 민간이 사회주택을 운영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한다. 지난해 국회도서관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저소득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사회주택을 공급하고, 외관과 품질, 면적 등 조건도 민간 임대주택과 구분하기 어렵다. 오스트리아는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사회주택이 도심의 랜드마크가 됐다. 수도 빈에 있는 사회주택이 무려 44%를 차지한다. 덴마크는 인구의 60%가 사회주택 입주 경험이 있다. 소득과 상관없이 15세 이상 모든 국민이 사회주택입주 대상자다. 한국의 사회주택 면적 평균은 45.9㎡지만, 영국의 사회주택 면적 평균은 67㎡에 달한다.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열린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패러다임 전환: 사회주택 활성화를 중심으로’ 토론회에서는 유럽의 사례를 참고한 사회주택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안정적으로 사회주택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정립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지난 2015년부터 2024년까지 국내에는 토지임대부·리모델링·​특화형 등 사회주택 6582호가 공급됐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주택 운영사 관계자 C 씨는 “사회주택 사업은 공공과 민간이 함께하는 것인데, 지금은 문제가 생기면 공공은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구조다. 공공기관의 행정적 이유로 입주가 지연되면서 운영회사의 수익이 악화되고 자금난에 빠진 사례도 있었으나 공공기관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며 최근 사회주택 융자 지원 예산마저 줄어들고 있다고 토로했다.

사회주택 전문가인 최경호 전 주거중립성연구소 소장은 “유럽은 19세기 도시화 시기부터 협동조합 등 제3섹터가 주택문제 해결 주체로 등장했다. 반면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과정에서 그런 구조가 끊기고, 주택 공급은 공공과 시장의 몫이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유럽과 가장 다른 점은 ‘전세제도’다. 최 소장은 “사회주택이 전세와 경쟁하려면 보증금과 월세를 동시에 낮춰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토지비나 금융비용을 지원해 공급자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또 현재의 전세 중심 금융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전세사기 구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초기 공사비용을 은행에서 빌리고, 분양대금을 전세금으로 회수하는 구조가 전세사기 근원이라는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저리 공급자금융을 도입해 전세금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업자가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토지임대부 사회주택도 같은 맥락이다. 최 소장은 “전세금 반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은 모두 월세로 전환하거나, 공공이 리츠를 설립해 보증금 반환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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