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트의 완성은 시계’… 가격대별 드레스 워치 체험기 [김범수의 소비만상]

2025-03-15

손목시계의 기본이자 근본은 정장과 함꼐 착용하는 드레스 시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세기 손목시계가 처음 탄생한 이래 손목시계는 하나의 패션이자 정장의 일부처럼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 때문에 손목시계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드레스 시계 용도였다. 20세기 들어오면서 손목시계가 군사와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이면서 ‘툴워치(Tool Watch)’라는 개념이 생겼지만, 드레스 시계는 시계의 역사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해 오고 있다.

‘드레스 시계‘라는 명확한 정의는 없다. 다만 정장 차림에서 큰 위화감이 없어야 하는 만큼, 툴워치보다 비교적 단순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또 셔츠 안으로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크기가 크지 않고, 얇은 편이다.

보통 남성들은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면서 드레스 시계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아날로그 시계보다 갤럭시워치 같은 스마트워치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사례가 많지만, 그럼에도 수 많은 직장인들이 시계 취미라는 금단의 길을 드레스 시계로 입문하는 편이다.

기자가 직접 구매해서 사용한 시계 중 괜찮다고 생각한 드레스 시계를 가격대별로 골라봤다. 기사에 나온 시계 일부는 처분했지만, 대부분 지금도 보유하고 있다. 또한 광고나 외부 협찬은 전혀 없다.

◆사회 초년생을 위한 100만원 이하의 드레스 시계

100만원 이하의 드레스 시계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티쏘(Tissot)의 ‘르로끌’(Le Locle)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 유명해서 드레스 시계의 입문을 꼽으라고 하면 상당수가 이 시계를 꼽을 정도다.

로마자로 표기된 군더더기 없는 인덱스(시간을 표시하는 숫자나 눈금) 디자인과 어느 손목에서나 어울리는 39mm 사이즈는 드레스 시계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100만원 이하의 흔치 않은 스위스 무브먼트(Movement·시계의 엔진)가 들어갔다는 점에서 드레스 시계 입문의 정석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티쏘 역시 가격 인상의 여파에 벗어나지 못했는지 어느덧 르로끌의 가격이 100만원을 앞두고 있다. 10여년 전 사회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70만원을 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가격이 오르긴 확실히 올랐다.

보스톡(Vostok)의 레트로 모델을 알게 되면서 티쏘 르로끌은 생각보다 오래 함께하지 못했다. 보스톡 시계는 일반 사람은 거의 알지 못하는 러시아 브랜드다.

보스톡 시계는 과거 구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된 브랜드로, 기술력은 중국산 시계보다 떨어지지만 상당히 독특한 방향으로 전개된 시계다.

오늘날 시계의 엔진이자 핵심 부품인 무브먼트가 스위스 설계로 표준화됐지만, 러시아 시계의 무브먼트는 과거는 물론 오늘날에도 독자적인 설계를 가지고 있다. 물론, 독자적인 설계라고 해서 뛰어난 기술은 아니다.

보스톡 시계는 적당한 디자인이라면 팔리던 말던 일단 찍어놓고 보는 ‘인민의 시계’ 습관이 남아있는 덕에 수많은 모델을 출시하고 있다. 또한 일반 시계에서 볼 수 없는 색상이나 디자인을 생산한다.

그 중 레트로 모델은 20만원 이하에 구매할 수 있는 나쁘지 않은 드레스 시계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은 로마자 기반의 인덱스와 38mm의 사이즈, 얆은 두께로 드레스 시계 기본에 충실했다.

다만 오늘날 스테인리스로 제작되는 시계 케이스(몸통)과 달리 과거 방식인 황동 케이스에 도금한 형태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도금이 벗겨질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저렴한 가격과 나쁘지 않은 디자인, 그리고 소련의 똘끼(?)가 남아있는 ‘B급 감성’ 때문에 티쏘 르로끌 대신 지금도 보유하고 있는 모델이다.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팔지 않기 때문에 구매에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공식 홈페이지에서 번역기의 도움을 받으면 어렵지 않게 직구할 수 있다.

◆마지막 시계이길 바라며…100만~500만원의 드레스 시계

100만이상 500만원 이하의 가격대는 비교적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마지막 시계이자 오랫동안 착용할 시계를 찾는 가격이기도 하다. 운이 좋으면 이 가격대의 시계를 사고 졸업을 할 것이고, 운이 나쁘면 시계의 망령이 돼 영원토록 시계를 갈구하게 된다.

기자의 첫 시계이자 오늘날 시계 망령의 길로 이끈 건 에포스(Epos)의 ‘나이트스카이’(Nightsky) 모델이다. 몇 년 전 에포스 시계가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철수하면서 오늘날에는 다소 생소한 브랜드다.

에포스 나이트스카이 모델은 에포스 시계 중 비교적 고가 모델인데, 이 시계를 골랐던 이유는 하이엔드 시계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밤 하늘의 디자인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날짜, 요일, 월을 보여주는 트리플 캘린더와 달의 모습을 보여주는 ‘문페이즈’(Moon Phase) 기능이 모두 들어간 것 치곤 가격이 저렴한 것도 장점이다.

융한스(Junghans) ‘막스 빌’(Max Bill)은 대표적인 독일 시계다. 특히 스위스 시계 디자인이라는 일변도 속에 독일의 미니멀리즘 정신인 바우하우스(Bauhaus) 양식은 특별한 느낌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융한스의 막스 빌은 스위스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막스 빌이 직접 디자인 했으며, 지금까지 큰 디자인 변화 없이 이어져 오고있다.

지금도 소유하고 있는 융한스 막스 빌 모델은 2018년을 기념하는 한정판이다. 한정판이지만 뒷면과 날짜창의 숫자를 표시하는 색상이 다른 것 외엔 차이점은 없다.

이 모델은 기계식 무브먼트가 아니라 배터리가 들어가는 쿼츠(Quartz) 무브먼트다. 보통 쿼츠 무브먼트는 기계식 시계에 비해 디자인 측면에서 비교적 아쉬운 점이 많지만, 융한스 막스 빌 쿼츠 시계는 두께가 7.7mm 밖에 되지 않는다. 비교적 두꺼운 기계식 막스 빌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얇아 착용감이 우수하다.

융한스 막스 빌은 최근까지 100만원 이하의 우수한 가성비를 자랑했지만, 역시 가격이 올라 100만원을 넘어섰다. 다만 중고로 잘 찾아보면 반 값에 ‘득템’할 수 있기도 하다.

◆시계 망령의 영역…1000만원 이상의 드레스 시계

1000만원 이상의 드레스 시계는 명백한 ‘사치품’의 영역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1000만원 이상의 드레스 시계를 구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구입하게 된다면 고소득의 부유층이거나 시계의 망령이라고 볼 수 있다.

롤렉스는 시계를 거의 모르는 사람도 아는 브랜드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 중 데이트저스트(Datejust)는 1945년에 출시된 이후 디자인이 거의 변하지 않으면서 베스트셀러로 이어져 오면서 가장 ‘롤렉스 다운’ 인지도를 자랑한다.

물론 롤렉스 데이트저스트가 드레스 시계라는 질문에는 지금도 논란이 있다. 보수적으로 따지면 데이트저스트는 드레스 시계라기 보다는 일상에서 편하게 착용할 수 있는 데일리 워치에 더 가깝긴 하다. 하지만 정장과 너무나 잘 어울리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드레스 시계로 무게가 쏠리고 있다.

‘시계의 시작과 끝은 롤렉스를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했다가 인정하는 것으로 끝난다’고 한다. 이 말은 데이트저스트 모델을 착용하면서 바로 이해됐다.

롤렉스 데이트저스트는 비교적 늦게 보유하게 됐다. 지금은 정장을 입을 때 가장 많이 착용하는 시계이기도 하다. 그 만큼 대체 불가의 매력이 있다.

롤렉스 데이트저스트를 구입할 땐 사이즈와 디자인을 두고 큰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사이즈의 경우 36mm와 41mm, 디자인은 바(bar) 형태 보석 형태의 인덱스에 대한 고민이다. 가장 보편적인 조합은 ‘36mm-텐포인트(보석 다이얼)’, ‘41mm-바’라고 보면 된다.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주인공인 닥터 스트레인지가 착용하는 시계로 더 유명해진 브랜드다. 이 가운데 ‘마스터 울트라씬 문’(Master Ultra Thin Moon·울씬문) 모델은 두께가 10mm도 안되는 말도 안되는 스펙을 자랑한다.

보통 기계식 시계의 두께는 12~14mm 인 경우가 많다. 14mm가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손목 시계가 두꺼울 수록 시계가 아닌 밥통을 올려놓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착용감 측면에서 큰 단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예거 르쿨트르의 울씬문 모델은 9mm의 두께로 비교적 슬림한 정장에서도 잘 어울린다. 이 모델은 기자의 결혼식 당일에도 함께 했던 시계이기도 하다.

가장 최근에 보유하게 된 드레스 시계는 IWC의 포르투기저(Portugieser) 크로노그래프 모델이다. IWC의 포르투기저 역시 1939년 최초 출시 이후 스테디셀러로서 오늘날 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모델이다.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가 IWC 포르투기저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고, 두께가 13.5mm이지만 샌드위치처럼 층층이 쌓아놓은 케이스 디자인상 이보다 훨씬 얇아 보이는 착각을 준다.

불과 2019년까지만 해도 IWC 포르투기저는 1000만원 이하의 좋은 드레스 시계 선택지였는데, 자사 무브먼트를 탑재한 신형을 출시하면서 가격도 1000만원을 넘겨버렸다. 또 신형을 출시하면서 다이얼에 초록색, 빨간색, 검은색 등 다양한 색상을 넣었지만, 그럼에도 가장 선호되는 색상은 역사가 오래된 흰색 다이얼 버전이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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