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리포트] '멀티플렉스의 위기'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합병을 보며

2025-05-15

[비즈한국]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 게 아니라 여가를 즐겁게 보내려 한다면 대개 영화관만 방문하지 않는다. 맛집도 가고 카페도 가고 산책도 한다. 데이트를 하거나 가족끼리 나들이를 나왔다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요즘은 웨이팅 앱이 있어서, 여러 가게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힘들게 줄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반면 멀티플렉스는 그 안에서 모든 활동을 하게 만든다. 건물 안에는 대기 시간에 각종 게임을 하는 공간과 스낵, 커피를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사실 영화관 매출액은 티켓이 아니라 팝콘과 콜라에서 나온다는 게 불문율이다. 티켓 가격이 1만 5000원이라면 상영관은 그중 5900원 정도를 가져간다. 팝콘과 음료는 1인이 7000~8000원, 2인 세트는 1만 5000원 정도로 가격이 책정되는데, 판매액이 전부 영화관 수익이 된다. 재료 원가는 판매 가격의 10% 정도다.

관객들은 상대적으로 비싼 데다가 다 먹지도 않을 팝콘과 콜라를 산다. 정말 기꺼운 마음으로 살까. 알 수 없다. 외부 음식 반입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눈치가 보이고 밖으로 나가기도 귀찮아서 산다. 관객 개인의 탓만은 아니다. 애초 공간 구조를 그렇게 만들었다.

멀티플렉스는 관객이 와서 영화를 고른 후 부대시설을 이용하며 시간을 보내도록 공간을 구성한다. 영화를 매개로 여러 소비 행위를 유도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멀티플렉스가 1층에 있는 경우는 없다. 지상에서 상당히 위쪽에 있다. 1층이면 외부 출입이 편하지만, 높은 곳에 있다면 이동이 불편하다. 엘리베이터 숫자도 많지 않다. 주말에는 사람이 더 많아 편하지 않다. 그런데 티켓 가격은 주말이 더 비싸다. 마땅히 앉아 있을 데도 없다.

주중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는 직장인들에게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더 이상 유쾌하지 않다.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가족과 함께 가면 불편함은 가중된다. 한번 건물 밖으로 나가면 다시 들어오기 힘들기에 그 자리에 어떻게든 버티고 있어야 한다. 시끄럽고 어두운 곳에서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기는 시간도 아깝고 몸도 마음도 피곤하다. 그러니 살찌는 팝콘과 콜라로 피로감을 고육지책으로 해소하려 한다. 코로나 19 팬데믹 전에는 그래도 문화생활에 참여한다는 만족감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심리적 동기나 목표는 찾을 수 없다.

예매 후에 가족과 함께 맛집도 찾고 좋은 카페도 가고 싶은데 멀티플렉스는 이러한 동선에 맞지 않다. 멀티플렉스는 임대료가 비싼 도심에 있기에 주변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나 식당이 많다. 더구나 웬만한 영화는 곧 OTT를 통해서 볼 수가 있다. 영화를 꼭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가 없다. ‘홈플렉스’라고 할 만큼 집에서 보는 것이 더 편해졌다. 아울러 넷플릭스 같은 OTT 콘텐츠가 훨씬 더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극장의 콘텐츠가 살아있는 체험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부모님이나 어르신들은 콘서트나 뮤지컬 공연을 선호한다. 영화보다 이러한 생생한 문화적 경험이 아이들에게도 더 유익하다. 이럴 때 가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원하는 가치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값을 따지지 않은 것이 관객들이다. 영화관 티켓 가격이 비싸다는 건 가성비는 물론이고 가심비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특정 공간을 벗어나 찾아가는 상영관을 운영한다. ‘동네방네비프’라는 이름으로, 산과 바다는 물론 부산의 개성 충만한 공간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그런 일상 공간에서 제작진과 관객들이 대화도 나눈다. 부산국제단편영화제도 ‘찾아가는 BSIFF’를 운영하며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특정 건물 안에서만 영화를 상영한다는 고정된 생각을 버리고 관객들이 있는 곳에서 찾아가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예전의 단관 극장은 1층에 있어서 관객들이 마음대로 오가면서 지역 점포들이 공존 공생했다. 하지만 멀티플렉스가 점령한 이후 주변 상권의 다양성과 활성화는 위축되었다.

최근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의 합병이 크게 화제가 됐다. 영화산업의 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인데, 과연 합병이 답이 될는지는 모르겠다. 규모의 경제를 키우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지만 수용자, 즉 관객의 관점은 얼마나 반영할지 의구심이 든다. 관객들이 있는 곳에서 최대한 편의에 맞게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다면 영화 산업은 위기일 수밖에 없다. 멀티플렉스 체제도 미래가 없을 것이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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