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람 살릴 ICT에 힘이 없다

2024-09-27

[정보통신신문=서유덕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한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이어가는 가운데,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주요 의료기관의 응급환자 수용이 적시에 이뤄지지 못하는 사례가 여럿 나타나고 있다.

일선 응급의료 현장에서는 환자를 서둘러 병원으로 옮기고자 하는 구급대원·보호자들이 응급실 수십 곳에 전화를 걸어대느라 바쁘다.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문제의 본질이겠으나, 응급의료의 최일선에서 현장 구급대원들의 원활한 환자 이송을 도울 수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시스템이 자리잡혔다면 어땠을지 아쉬움이 남는다.

구급대원이 단말기를 통해 권역 내 응급실의 병상·의료진 현황 등을 즉각 확인하고 환자 수용을 요청한다면 한층 수월하게 환자를 이송할 수 있지 않을까.

의료기관에서도 이송 중인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받아본다면 응급실 도착 후 치료를 더 신속 정확하게 제공, 소생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개념의 기술과 체계는 이미 전격 보급된 상황이다. 소방청은 ‘119구급 스마트시스템’을 개발하고 지난 2월 1일부터 전국구급대에 도입했다.

이는 구급대원이 단말기에 환자 정보를 입력하면 의료기관에 동시에 전송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도로 위 구급차 안에서 이송할 병원을 찾느라 수십 곳의 병원에 전화를 돌려대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대폭 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응급실 뺑뺑이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 추석에는 응급상황에 놓인 부산의 30대 환자가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해 끝내 숨졌다. 당시 구급대원과 보호자는 병원에 92차례나 전화를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 현장에서는 구급 현장과 병원 간 혼선이 여전함을 지적한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서울소방지부는 시스템 정비 강화, 시스템에 수용 불가 사유 명시 같은 운영상 미비점 보완과 함께 119구급 상황센터에 병원 선정 권한 부여 같은 법적·행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소방노조는 “병원들이 119에 수용 불가를 제대로 통보하지 않고 있으며, 구급대가 병원에 전화 문의를 할 때 거절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는 현장에서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아주 중대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노조의 말마따나 119구급 스마트시스템이 의료 현장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법제 정비가 절실해 보인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 할 수 있을 만큼 ICT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초고속 유무선 통신, 빅데이터 수집·저장·처리,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서비스는 정보통신 인프라와 기술의 발전·확대에 힘입어 경제적 가치 창출, 사회 안전망 강화, 국민 편의 개선에 이바지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훌륭한 기술이라고 해도 규제에 가로막혀 있거나 필요한 제도적 장치가 없어 현실에 쓰이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119구급 스마트시스템이 응급의료 현장에서 제 기능을 다하도록, 첨단 기술이 문제의 본질에 뿌리내려 새싹을 틔우는 데 필요한 권한과 법적·행정적 조치가 뒷받침되길 바란다.

이제 ICT라는 화려한 ‘용 그림’이 빛을 낼 수 있게 법제라는 ‘눈동자’를 그려 넣을 차례다. 국가 경제와 국민 삶을 혁신할 ICT가 긴 잠에서 깨어나 날아오를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새 관점, 새 시선을 견지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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