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뒤 '왕따' 취급 러 외무장관…올해는 두리안 특별 대접

2025-07-11

"라브로프, 당신이 좋아하는 두리안을 우리가 디저트로 준비했습니다."

모하메드 하산 말레이시아 외무장관은 10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회의 계기 만찬(갈라 디너)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향해 이런 농담을 건넸다. 두리안은 풍부한 식감과 독특한 냄새를 지닌 열대과일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즐겨 먹는데, 이날 만찬의 후식으로 준비됐다고 한다.

올해 아세안 회의 의장국인 말레이시아의 외교장관이 라브로프 장관의 기호를 미리 파악해 만찬에서 마이크를 잡은 기회를 빌어 농담을 던진 것이라 눈길을 끌었다. 정치인 출신인 모하메드 장관이 의장국 장관으로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별다른 의도 없이 던진 농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아세안이 러시아 외무장관을 대하는 태도에서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라브로프는 줄곧 소외된 모양새였다. 지난해 7월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본회의장에서 라브로프는 홀로 앉아 다른 대표들과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재작년 7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ARF에서도 라브로프에게 말을 거는 외교장관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는 회원국 장관이 한 곳에 모이는 만찬에서 카메라의 스포트라이트는 물론 의장국의 배려까지 받은 셈이다. 모하메드 장관의 농담에 라브로프 장관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미소로만 답했다고 한다.

이날 오후 열린 라브로프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간 양자 회담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미국, 러시아를 비롯한 각국 취재진이 모여든 가운데 두 장관 모두 별다른 발언 없이 회담장에 들어갔다. 약 50분의 회담을 마친 뒤 루비오 장관은 "솔직한 대화를 했다"며 "(우크라이나 종전 관련) 새로운 접근법을 논의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이날 회담에는 대표적인 '한국통'인 앨리슨 후커 미 국무부 정무차관도 배석했다. 다만 후커 차관은 회담 이후 중앙일보의 관련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를 완전히 점령했다고 주장하고 우크라이나 전역에 공세를 강화하는 등 강공 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군의 3차 파병도 조만간 이뤄질 가능성이 큰 가운데 우크라이나 휴전 문제는 북한군 파병으로 사실상 전쟁 당사국이 된 한국에도 중요한 사안이다.

11일(현지시간)로 예정된 ARF 계기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에서도 북·러 군사협력 문제가 논의될 전망이다. 다만 북한은 역내에서 유일하게 참여하는 다자안보협의체인 ARF에 올해는 불참했다. 이는 북한이 2000년 ARF에 가입한 이후 처음이다. 무엇보다 말레이시아와 북한이 단교한 상태라는 점이 영향을 줬다.

아세안에선 의장국과 외교 관계가 없는 경우 ARF 회원국이라도 초청하지 않는 게 관례라고 한다. 북한과 말레이시아는 지난 2019년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관계가 냉각됐으며, 2021년 말레이시아가 대북 제재를 위반한 북한 사업가를 추방한 뒤 단교에 이르렀다.

북한은 그간 ARF 회의 종료 뒤 발표되는 의장성명에서 북핵 문제를 규탄하는 표현의 수위를 낮추기 위해 매년 외교전을 벌였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에도 외무상 대신 ARF 주재국 대사나 주인도네시아 대사를 수석대표로 보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상 처음으로 불참한 가운데 북한 관련 문안에 변화가 있을지도 관심이다. 지난해까지 ARF 의장 성명에는 북핵 문제 관련 'CVID',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문구가 포함됐다.

앞서 한국 정부도 북핵 문제의 직접 당사국으로서 의장성명에 비핵화를 촉구하는 내용이 명확히 포함되도록 회원국들을 설득해왔다. 다만 이재명 정부는 북한과 대화에 무게를 두는 기조를 보일 것이란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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