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를 할 때 수리수선가라고 말하면 작가라고 소개할 때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예쓰!). 수리수선은 일상적인 일이지만 나는 이것을 혼자만의 경험으로 남기지 않고 여러 사람과 공유하기를 중요한 목표로 두고 있다. ‘수리(修理)’는 고장 나거나 헌 물건을 이롭게 고치는 일이다. 넓게 보면 해진 것을 기우는 수선(修繕)의 영역도 그 안에 포함된다. 그래서 나는 온갖 일에 수리라는 이름을 붙인다. 운동화 수리, 그릇 수리, 고무장갑 수리…. 단어들의 조합이 낯설다면 영어로 바꿔보자. 모두 ‘리페어(repair)’라는 단어로 통합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노트도 ‘수리’할 수 있다. 지난해 다 쓰지 못한 노트를 활용해 새 노트를 만드는 것이다. 간단한 노트 수리법을 알아보자.
*준비물: 송곳, 돗바늘, 실, 커터, 두꺼운 종이
먼저 표지를 뜯는다. 책등은 본드로 붙인 것과 실로 엮은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본드로 붙인 노트는 안 쓴 부분만 뜯어 다시 표지를 싸주면 되고, 실로 엮인 노트는 펼쳐서 바느질이 보이는 페이지를 찾는다. 커터로 실을 끊어내면 내지(內紙)가 분리된다. 같은 작업을 반복하면 가운데가 접힌 종이 무더기가 생긴다. 안 쓴 종이들을 골라 가운데를 겹친다. 우리의 목표는 도합 40장을 넘지 않는 얇은 노트를 만드는 것이다.
표지로 쓸 만한 두꺼운 종이를 내지와 같은 크기로 자른 다음 가운데를 접는다. 표지는 가장 밑에 두고 그 위에 내지를 놓는다. 종이의 접힌 선을 한데 정렬한 다음 송곳으로 구멍을 뚫는다. 구멍의 간격이나 개수는 당신 마음이다. 바닥에 택배 상자나 코르크판을 놓으면 구멍이 쉽게 뚫린다. 바늘에 매듭 없이 실을 꿰어 첫 구멍에 넣고 차례로 바느질한다. 마지막 구멍에서 다시 돌아와 실을 당겨 매듭지으면 노트가 완성된다.
그런데 바느질을 못하겠다면? 접힌 부분 위아래에 펀치로 구멍을 하나씩 뚫고 끈을 매자. 가장 빠르고 손쉬운 북바인딩(bookbinding)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갖고 있던 종이봉투를 표지 안쪽에 붙여두면 영수증이나 견출지를 넣어 보관할 수 있어 편리하다.
표지는 예전에 썼던 노트, 스케치북의 표지를 재사용하거나 리플릿, 영화 포스터, 모아둔 포장지나 쇼핑백을 활용할 수 있다. 종종 ‘버리는 옷과 노트로 만드는 북바인딩 워크숍’을 진행하는데, 참여자들은 자신의 낡은 옷과 노트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노트를 만든다. 단추, 레이스, 브랜드의 로고 등 무엇이든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어느 수업에서는 기관이 보관하고 있던 현수막을 잘라 표지를 만들었다. 현수막에 있는 도형, 색깔, 글자 하나하나가 노트의 디자인이 되었다.
죄책감과 미련 덩어리였던 낡은 노트는 수리의 과정을 거쳐 새 계획을 가진 새 노트가 된다. 버리려던 것이니 쓰는 데 부담이 없고, 얇아서 끝까지 쓰니 빠르게 성취감이 든다. 나는 가방마다 노트를 하나씩 넣어둔다. 단어 하나, 낙서 조금, 그렇게 한 페이지씩 채워간다. 다 쓴 노트가 있다면 한 번쯤 수리해보자. 비어 있는 페이지들의 가능성을 되살려 조금씩 채워가면 묵혀왔던 상상과 계획들이 마침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모호연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 일상 속 자원순환의 방법을 연구하며, 우산수리팀 ‘호우호우’에서 우산을 고친다. 책 <반려물건> <반려공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