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에 체온 잘 안 떨어져 무너지는 수면 리듬
카페인은 오전에만…오후엔 생수로 수분 보충
미지근한 물로 샤워·에어컨 취침 후 꺼지도록
#1. 서울 마포구에 사는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지면서 피로가 쌓이고 집중력도 떨어지는 날이 잦아졌다.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냉감 이불과 냉감 매트도 새로 장만해 봤지만, 잠드는 데만 몇 시간이 걸리거나 자는 도중에도 자주 깨 곤혹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2. 나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잠이 줄어든 60대 B씨. 젊었을 때부터 불면증을 겪어온 그는 최근 기록적인 폭염에 잠에 못 드는 날이 더 늘었다. 수면 시간이 부족하고 수면 패턴까지 불규칙해지면서 한 달째 수면 부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찜통 같은 무더위가 낮부터 밤까지 계속되면서 밤잠을 설치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기온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는 몸의 생체리듬을 흐트러뜨리고 깊은 수면을 방해해 만성적인 피로와 건강 악화를 유발할 수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열대야는 전날 오후 6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으로 유지되는 현상을 말한다. 전국적으로 폭염이 이어지면서 29일 기준 서귀포는 14일째, 서울은 10일 연속 밤 기온이 25도를 넘겼다.
실내 온도가 25도 이상으로 장시간 유지되면 체온조절 중추는 각성 상태가 된다. 사람의 심부체온(신체 내부 기관의 온도)은 저녁 8시에 가장 높아졌다가 밤 11시부터 떨어지기 시작해 새벽 5시경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 이처럼 체온이 떨어져야 뇌의 시상하부에서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분비되며 잠에 들 수 있다.

하지만 무더운 밤 기온 때문에 체온이 떨어지지 않으면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되고, 이로 인해 수면 구조에 이상이 생긴다. 날은 밝아오는데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황경진 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열대야로 인해 체온이 떨어지지 않으면 시상하부에서 멜라토닌 분비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잠들기 어려워진다”며 “높은 체온 상태로 잠을 자면 자주 깨게 되는데, 이때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해 뇌와 중추신경을 더욱 각성시켜 숙면을 방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열대야로 인한 수면 부족은 단순히 피로를 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집중력 저하, 기분 변화, 사고 위험 증가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장기간의 수면 부족은 면역력 저하와 함께 자율신경계 불균형, 혈압·혈당 조절기능 약화 등을 유발해 심혈관·뇌혈관 질환이나 암 발생 위험도 높일 수 있다.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 등 정신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열 스트레스로 증상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수면 부족이 3주 이상 지속되면 만성불면증으로 이어지기 쉬운데, 이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황 교수는 “병원에서는 환자의 수면 습관을 점검해 잘못된 부분을 교정하는 인지행동치료를 우선적으로 진행하고, 증상이 심각한 경우에는 필요시에만 복용할 수 있는 소량의 수면제를 처방한다”고 말했다.
여름철 불면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매일 같은 시간에 기상하는 습관은 생체리듬을 안정시키고 불면 증상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자주 찾는 아이스 커피나 콜라 등 음료는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다. 카페인은 체내에 최장 12시간까지 머무르기 때문에 오전에 한 잔 정도만 마시고 오후에는 생수를 마시는 것이 권장된다. 취침 전 마시는 시원한 맥주는 일시적으로 잠을 유도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뇨작용 등으로 수면을 방해할 수 있어 피해야 한다.
체온을 자연스럽게 낮추려면 잠들기 3시간 전 과식이나 과격한 운동은 삼가야 한다. 샤워는 찬물보단 미지근한 물로 하는 것이 심부체온 조절에 더 효과적이다. 실내 온도는 되도록 25~25도, 습도는 50~60% 정도로 유지하고, 에어컨은 잠든 후 1~2시간 뒤 자동으로 꺼지도록 설정하면 숙면에 도움이 된다.

또 전날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다고 해서 낮잠을 오래 자는 것은 오히려 수면 리듬을 흐트러뜨릴 수 있어 낮잠은 30분 이내로 짧게 자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억지로 자려하기보다는 침대에서 벗어나 긴장을 푸는 활동을 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황 교수는 “잠이 안 올 땐 요가나 가벼운 스트레칭 등 이완 요법을 활용해 스트레스와 각성 지수 자체를 낮추는 방법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국윤진 기자 sou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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