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 킬러 킬러
장강명 외 13인 | 한겨레출판사232쪽 | 1만6800원
수능 당일 아침, 수험생 아들과 아버지가 알약 한 알을 두고 실랑이를 벌인다.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집중력 강화제’다.
미군이 작전 개시 직전 특수부대원들에게 지급한다고 알려진 이 약은 태평양 건너 한국의 ‘사교육 메카’ 대치동으로 왔다. 교육 당국은 복용을 금지했으나 대치동에선 한 알당 수백만원씩 하는 이 약을 ‘못 구하면 친부모가 아니’라는 농담마저 돈다.
아들이 “반칙하지 않겠다”고 버티자 존경받는 교수인 아버지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한다. “네가 정말 다른 수험생들과 동등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다고 믿니? (중략) 공정한 경기란 건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어. 지금 진짜 네 경쟁자라고 할 만한 애들은 이 약을 다 먹었을 게다.”
소설집 <킬러 문항 킬러 킬러>의 표제작(장강명) 속 한 장면이다.
아버지의 위선에 독자들은 실소하면서도 이내 마음 한 구석에서 서늘함을 느낄 것이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진 14일 아침, 실제 어딘가에서 벌어질 법한 일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킬러 문항 킬러 킬러>는 소설가 장강명이 이기호, 이서수 등 동료 작가 13인과 함께 쓴 소설집이다. 작년 8월부터 지난 1월까지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단편소설 10편에 새 작품 4편을 더해 묶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소설가들이 손잡고 만들었다.
소설에는 입시 경쟁과 사교육 열풍, 학교 폭력, 청소년 인권 등 작가들이 목도한 오늘날 교육 현실이 펼쳐진다. 대입을 위해 자퇴하겠다는 아이에게 “잘 생각했다”고 칭찬하는 담임 교사, 작곡가가 되고 싶다는 자녀에게 “일단 자사고(자율형 사립고)부터 가라”고 하는 엄마, 정체성을 숨기려 안간힘을 쓰는 퀴어 학생 등이 등장한다.
14인의 작가와 이들의 소설을 경유해 전해진 2020년대 교육 현장은 지켜보기 무척 괴로운 것이다. “저희가 본 것을 같이 봐주시고, 함께 괴로워해 달라”는 장강명의 말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