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귀를 막아도 들리는 비명(悲鳴)소리] 죽음의 그림자(3)

최종두 울산예총 고문(시인, 소설가)의 1980년 삼청교육대 수난기(受難記)를 연재한다. 울산MBC 기자였던 최종두 고문은 1980년 경기도 포천에 있는 군부대에 끌려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연재 글에는 인권을 짓밟는 ‘삼청교육’의 참상이 생생히 그려져 있고, 1970~80년대 울산의 정치, 경제, 언론, 문화계 비사(祕史)도 엿볼 수 있다. 최 고문은 “1980년대는 찬탈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영혼을 뭉개버리는 무자비한 고문을 가하고, 전주 같은 목봉을 힘겹게 들게 하면서 서막을 열었다”며 “몽둥이와 총으로 지레 겁을 주며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실험한 것이 제5공화국의 주구들”이라고 술회했다. <편집자 주>

윤00은 나의 손을 꼬옥 잡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C급으로 온 사람들이 특별한 사고만 치지 않으면 귀휴 조치를 한다는 00을 보내고 나는 내무반을 향해 걸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임마! 그만해! 귀휴 대상자야!”하던 그 소리가 또다시 나의 귀를 때리며 들려오는 것이었다.

사실 00이 전한 말이지만 C급에 대한 귀휴 심사가 있다는 말을 처음 듣는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윤00은 귀휴란 말의 뜻조차 모르는 친구가 아닌가? 내가 곤봉으로 두들겨 맞고 혼절해 버린 순간에 들은 귀휴 대상자란 말과는 분명히 일관성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귀휴! 그 가슴 설레는 꿈을 꾸면서 세월이 가는지도 오는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긴장된 생활 속에 있음을 실감하면서도 이제는 두려움까지 나에게서 떠나가는 것이었다. 한 가지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정신을 그 한쪽으로만 쏟다 보면 뇌리에 남는 것은 그 소망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체감하고 있었다.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당하게 되는 기합도 구타도 고된 훈련도 두렵지가 않을 것 같았다.

팔월 한가위를 하루 앞둔 추석 전날이었다. 크고 둥글기만 한 달이 중천에 떠 있었다. 내무반에서도 어쩐지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감돌았다. 선임 하사와 조교가 지켜보는 가운데 소대원 모두에게 교육대에 오게 된 이유와 이곳에 와서 느낀 점을 말하도록 했다. 사실상의 휴식 시간이었다. 한 사람씩 발표하는데 그날은 1, 2분대를 뛰어넘어서 3분대부터 발표하게 되었다.

배00의 결원이 선임 하사와 조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3분대의 윤00가 머뭇거리며 일어섰다. 그는 “삼청교육대가 생기고 나서 깡패들, 소위 주먹들을 잡아다가 조지고 교육을 시킨다고 할 때 그… 뭐, 그런 게 있는 거겠지 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별 관심을 두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거는 그것이 아니라 말입니더, 생사람 잡아다가 죽이는 곳이라요, 허참.”

윤00가 여기까지 하지 말아야 될 말을 마구 쏟아내게 되자 선임 하사는 발표를 중지시키고 10분 동안 관물함 정리를 하도록 했다. 더 이상 놓아두었다가는 윤00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더 나오게 될지 몰라서인 것 같았다. 모두가 관물함을 반듯하게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 이번에는 조교가 “꽥” 소리를 질렀다. “동작 그만. 3분대 윤00 수련생의 발표를 들어 본다.”

윤00가 또 일어났다. “그래서 말입니더, 나는 여기로 오기 전에 아버지와 삼촌에게 자주 얻어맞았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 보기가 좀 민망한 것 같아서 나도 사람답게 살면서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맹세하는 마음으로 스님들이 하는 것 있지요? 삭발을 한다고 머리를 팍 잘라 버렸습니다. 여기 와서 머리 깎은 사람들 꼭 처삼촌 벌초하듯이 돼 있지만 보시다시키 나는 이렇게 맹숭맹숭하게 좋지 않습니까? 히히히…”

그가 히히거리자 소대원들도 따라 웃었다. 내가 조마조마하게 된 것은 윤00의 발표가 앞의 소리와 같은 투였기 때문에 혹시 선임 하사와 조교의 인상이 비틀어져 버릴까 해서였는데 이상하게도 그냥 넘어가는 것이었다.

다음은 또 3분대의 김00 차례였다. “나는 여기 이 머리 때문에 신세 조진 놈이 되고 만 사람입니다. 우리 동네에는 이발소가 없고 딱 한 군데 미장원이 있는 기라요! 어느 날 야밤중에 이 미장원에 도둑이 들어와서 미장원 미용기구를 몽땅 털어가 버렸어요. 그래 그 미장원 주인 년이 경찰서에 가서 피해자 조사를 받는데 빌어먹을 여자가 도둑놈의 인상을 말하면서 젊고 많이 본 신사 머리를 한 청년 같았다고 해버린 거라요. 다음 날 형사들이 들이닥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나를 무조건 가자는 거라요. 가서 내가 왜 조사를 받아야 하느냐고 달려들었더니 다짜고짜로 한 방을 올리는 게 아닙니까! 밤에 미장원 턴다고 잠을 못 잤으니 낮잠 자는 거 아이가 하면서 또 한 방을 올리기에 뭐 이런 것들이 있어 하고 걸상 하나를 발로 차버렸더니 그만 수갑을 채워 버리더라고요. 피해자의 진술이 신사 머리를 한 니 놈 같고 많이 본 놈 같다고 했는데 이 자식이 무슨 소리 하느냐고 유치장에 처넣어 버려서 그래서 여기 온 거라요! 세상천지에 이런 일이 어데 있단 말입니까? 전00이 새끼 삶아 먹어도 분이 안 풀릴 겁니더.”

나는 눈을 감아 버렸다. 어쨌거나 국가원수를 마구 거명하는 김00의 도를 넘은 말이 필연코 불벼락으로 이어질 것 같아서였다. 내무반에도 갑자기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김00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앉아버렸는데도 선임 하사와 조교는 아무 말이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선임 하사가 얼굴에 빙긋이 웃음을 띠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소대원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소대원들이 두런대기 시작해도 거기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다시 3분대 수련생을 지명해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의 이런 분위기가 아마 추석을 하루 앞둔 날이라 추석 기분을 살려 주려는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하는 속담 생각이 났다. 추석은 과연 명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종두 시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