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
복잡·불투명을 투명·청렴·전문성으로 바꿔
선종 직전도 개혁 작업…새 교황 개혁 완수 과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자 그가 추진해온 바티칸 은행 개혁이 조명을 받고 있다. 1942년 성직자와 교회 재정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바티칸 은행은 비밀주의와 스캔들로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 기간 동안 투명성이 대폭 개선되고, 재정 운영에 대한 중앙집중적 관리가 이뤄지면서 규제 감독도 강화됐다.
공식 명칭이 종교사업연구소(Institute for the Works of Religion, IOR)인 바티칸 은행은 2023년 기준 자산 54억 유로(약 61억 달러)에 달했다.
일부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반자본주의자로 평가하기도 했지만 주요 업적의 하나로 금융 개혁을 꼽는 이들이 많다. 교황은 2013년 즉위와 함께 선임자인 베네딕토 16세가 시작한 개혁 노선을 이어받아 바티칸 은행 개혁에 착수했다.
재임 첫해인 2013년부터 바티칸 은행의 연례 보고서 공개에 들어갔다. 이 보고서에는 수익과 운영비용, 자선 기부 등의 내역이 포함되어 있어 은행 운영의 투명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2014년에는 경제 문제에서 성직자의 영향력을 줄이고 프랑스 금융인 장-밥티스트 드 프랑수를 신임 은행장으로 임명해 조직 재정비에 나섰다. 드 프랑수는 인베스코 유럽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2014년 이후 지금까지 바티칸 은행장을 맡아오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정 투명성과 효율을 위해 인베스코, 독일 보험회사 에르고(ERGO) 등의 글로벌 경제 전문가 7인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소집했다. 회의는 고급스러운 사도 궁이 아닌 자신의 숙소인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의 소박한 회의실에서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이 교황의 사명"이라며 "비효율적인 재정 운영은 자선 활동을 방해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과거 계약 초과 지출을 수용했던 관행에 대해서도 "앞으로 초과 비용이 발생하면 바티칸은 지불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그를 마치 대기업 CEO처럼 평가했고 교황은 "해결책을 가져오라"는 말만 남기고 회의를 마치기도 했다.
바티칸은 KPMG를 통해 국제 회계 기준을 도입하고 어니스트앤영(EY)으로부터 감사를 받았고 델로이트와 스펜서 스튜어트를 통해 인재를 채용했다. 교황은 또 '경제 사무처'를 신설해 권한을 집중시켰는데 현재 수장은 MIT 출신으로 교회 관련 기관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이 같은 개혁에도 바티칸의 재정 문제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2014년에는 국무원 고위 추기경이 부동산 거래에서 거액의 손실을 입히며 논란을 일으켰고 2019년 조사 결과에서는 수백만 유로가 불법 리베이트와 사적 거래로 사라진 사실이 드러났다. 그럴 때마다 예외 없이 강력한 처벌이 내려져 모두 8명이 수감되고 2명에겐 벌금을 부과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정 개혁을 멈추지 않았다. 2021년부터 약 250명의 추기경 급여를 세 차례나 삭감했고 2023년에는 고위직의 주택 보조금도 폐지했다. 지난해 9월에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재정 적자 제로'를 위한 엄격한 시간표를 설정하라고 지시했다.
교황은 선종 직전까지도 재정 개혁을 놓지 않았다. 피로와 기관지염으로 로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한 지 13일째인 지난 2월 27일에도 바티칸의 만성적 예산 적자를 메우기 위한 위원회를 발족했다. 이 조치는 교황청 행정부인 쿠리아(Curia) 내 고위 인사들의 긴축 반대 요구를 무마하려는 전략적 시도로 알려졌다.
교황은 초기에 채용 동결을 선언하고 자연 감원을 통해 인력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연금 문제는 여전히 바티칸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바티칸은 크게 두 개 영역으로 나뉜다. 하나는 박물관 수익과 기념품 판매 등으로 흑자를 기록하는 '바티칸 시국(City State)'이고 다른 하나는 쿠리아다. 쿠리아는 매년 약 8억~9억 달러의 예산을 지출하며 5000만 달러 이상의 구조적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성 베드로와 바오로 축일에 전 세계 신자들이 헌금하는 성 베드로 성금도 이곳의 운영에 활용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성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사용하고자 했으나 생전 그 목표를 완전히 이루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바티칸이라는 복잡하고 불투명했던 조직에 투명성과 전문성, 청렴성을 가져오는 데 거의 기적에 가까운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말년에 병상에 누워서도 재정 개혁의 깃발을 놓지 않았던 프란치스코 교황. 후임자가 이 같은 개혁을 완수하려면 프란치스코 교황만큼 탁월한 전략과 개혁 의지가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깊은 슬픔을 안겨줬지만 그가 남긴 개혁은 오랫동안 교황청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유지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안유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