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때문에…휘청이던 전기차 산업 아예 주저앉나

2024-11-24

[주간경향] 한국의 ‘미래 먹거리’로 불리던 전기차 관련 산업이 휘청이고 있다. 전방산업인 전기차 업황 ‘둔화’가 후방산업인 2차전지, 배터리 소재 산업 ‘침체’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한국에는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전기차 관련 전·후방 산업이 모두 포진해 있다. 여기에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등 배터리 소재 산업 역시 세계시장 선두권에 있다. 전기차 산업이 일시적 정체를 의미하는 ‘캐즘(Chasm)’이 아닐 경우, 한국 주요 기업이 동시에 흔들릴 수도 있다는 의미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전기차로의 전환은 시간 문제 같았다. 주요 완성차 업체가 포진한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의 55% 수준으로 줄이는 ‘Fit for 55’ 정책을 시행했다. 이를 위해 2035년까지 새로운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전면 금지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2년 8월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에 서명하며 탄소 중립을 향한 유럽의 행보에 발을 맞췄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청정에너지 개발 및 사용을 지원한다는 것이 IRA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해당 기조는 결과를 보기도 전에 변곡점을 맞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ABT(Anything But Trump·트럼프 빼고 전부 다)를 모방한 ABB(Anything But Biden·바이든 빼고 전부 다)를 실행할 태세다. 휘청이는 전기차 관련 산업이 아예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 전기차 관련 산업은 완성차, 2차전지와 배터리 소재 산업으로 분리할 수 있다. 이들은 전·후방 산업으로 연결돼 있지만 매출, 영업이익 측면에서 종속관계가 아니다. 게다가 판매 상품이 전기차로만 구성된 테슬라 정도를 제외하면 완성차 업계가 곧 전기차 산업이라고 볼 수도 없다. 전기차 관련 산업에 불어닥친 위기가 캐즘인가, 정책 전환인가, 누가 타격을 입고 있는가 등은 이들 업계를 분리해서 봐야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는 2023년 매출 162.7조원, 영업이익 15.1조원 정도를 달성했다. 올해 3분기까지 매출은 약 128.6조원, 영업이익은 약 11.4조원이다. 지난해 동기와 비교할 때 매출액은 소폭 상승, 영업이익은 소폭 감소했다.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매출,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실적과 별개로 전기차 전략은 변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중장기 전동화 전략을 담은 ‘현대 모터 웨이(Hyundai Motor Way)’를 발표했다. 핵심은 2030년까지 전기차를 200만대 판매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 8월 진행된 현대차의 ‘2024 CEO 인베스터 데이(CEO Investor Day)’에서 목표 수치가 조정됐다. 2024년 33만대 판매 목표가 30만대로, 2026년 94만대 판매 목표는 2027년 84만대로 바뀌었다. 2030년 200만대 판매 목표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중간단계 목표가 각각 축소·이연됐다.

완성차 업계의 ‘미세 조정’은 2차전지(충전식 배터리)와 배터리 소재 생산 기업의 ‘거대 조정’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대표적 2차전지 업체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매출 33.7조원, 영업이익 2.16조원 정도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 호황을 맞았다. 하지만 올해 매출은 26조원, 영업이익은 67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2차전지 업체 중 가장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 회사다. 배터리 소재 생산업계는 더 어렵다.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생산하는 에코프로비엠의 지난해 매출은 약 6.9조원, 영업이익은 약 1560억원이었다. 올해 3분기까지 매출은 약 2.3조원,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했다. 해당 수치는 모두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전기차에 대한 정책 보조금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기록했다. 내년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성적은 더 악화할 수 있다.

트럼프, 진짜 전기차의 악재일까

미국 대선이 치러지기 전부터 트럼프는 한국 전기차 산업의 ‘악재’로 인식됐다. 트럼프는 환경정책도 경제 문제로 연결 짓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에 반대한다. 그린 뉴딜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청정에너지 사용으로 전환’, ‘온실가스 배출량 제로화’, ‘환경친화적 일자리 창출’을 하자는 것이 핵심인데 이를 정책화하면 IRA다. 트럼프는 그린 뉴딜이 석유와 가스 등의 전통적인 미국 에너지 산업에 타격을 주고, 미국 내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만든다는 인식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시장은 기민하게 반응했다. 미국 대선이 치러진 지난 11월 5일부터 20일까지 2차전지로 분류된 10개 기업(LG에너지솔루션·포스코홀딩스·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포스코퓨처엠·에코프로비엠·에코프로·에코프로머티·SKC) 시가총액 합은 약 28조원 감소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기차 보조금(7500달러·약 1000만원) 폐지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난 11월 15일 하루에만 2차전지 대장주 LG에너지솔루션이 12.09% 폭락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황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추가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만들어졌다.

이는 과도한 반응이라는 지적도 있다. IRA를 단순히 ‘미국에서 생산하는 한국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정도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생긴 우려라는 것이다. 실제로 IRA는 미국 재정수지 흑자를 유도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한국 완성차 업계가 연관된 전기차 보조금이 대표적이다. 미국 내에서 생산한 전기차 구매에 지급하는 보조금은 전기차 판매를 촉진하고, 이로 인한 소비세(판매세) 증대가 보조금 지출을 상쇄한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혜택을 받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dvanced Manufacturing Production Tax Credit·AMPC) 역시 비슷하다. 이는 미국 내에서 생산한 배터리와 같은 청정에너지 제품에 세액공제를 해주는 것인데 유·무형의 파급효과를 낳는다. LG에너지솔루션과 같은 세계적인 배터리 기업이 미국에 생산공장을 짓고 진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일자리 창출 및 세수 증대로 이어진다. 반대로 AMPC를 폐기하면 청정에너지 관련 첨단기업들의 미국 직접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 동시에 세액공제로 생기는 미국 내 생산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이 하락한다. 완성차 업계가 굳이 미국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자사 전기차에 장착할 경제적 유인도 없어진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IRA는 배터리 원자재의 일정 비율 이상이 미국산이거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들에서 생산한 것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 2023년에는 40%, 2024년에는 50% 하는 식으로 비율이 올라간다. 이를 폐기하면 웃는 곳은 딱 한군데밖에 없다. ‘중국’이다.

IRA만 놓고 보면, 폐기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폐기할 것이란 전망보다 합리적이다. 다만 트럼프라는 불확실성이 더해지며 IRA 폐기를 둘러싼 공포가 증대되고 있다. 이는 다시 한국 주요 기업에 대한 부정적 전망으로 이어진다. 윤석열 정부는 전기차와 2차전지 산업을 국가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 기업들이 IRA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 협상한 점을 외교적 성과로도 내세웠다. 이는 한국 기업의 미국 직접 투자로 이어졌다. 정부 설명대로면 국가 성장 동력이 흔들리는 동시에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인 성과도 사라질 위기다. 정부가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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