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그널 게이트’ 파문에 연루돼 물의를 일으켰던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부인·남동생 등이 속한 또 다른 개인 채팅방에서 공습 정보를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밀 유출은 없었으며, 고위급 간부들의 사적 논의에 불과했다”는 백악관의 해명도 군색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헤그세스 장관이 지난달 15일 예멘 공습 직전 시그널 채팅방 ‘국방/팀 허들(Defense/Team Huddle)’에 F/A-18 전투기 출격 일정 등 공습 정보를 공유했다고 보도했다. 허들(huddle)은 ‘작전 회의’를 뜻하는 표현으로, 이 채팅방은 헤그세스 장관이 취임 전인 지난 1월에 직접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NYT는 4명의 익명 취재원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파악했다고 했다.
이 채팅방에는 헤그세스 장관의 가족 등 군사 작전과 무관한 인물들이 들어 있었다. 헤그세스 장관의 부인 제니퍼 헤그세스, 동생 필 헤그세스, 개인 변호사 팀 팔라토리 등이 13명의 채팅 참가자에 포함됐다. 부인 제니퍼는 전직 폭스뉴스 프로듀서로 아무런 정부 직책을 맡은 적이 없다. 동생 필과 팔라토리 변호사는 ‘장관 선임고문’, ‘해군 법무관’ 등 국방부 직함을 받았지만, NYT는 “그들이 예정된 예멘 공습 정보를 알아야 할 이유는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팀 허들’은 트럼프 행정부 고위직이 기밀 유출 논란에 연루된 두 번째 채팅방이다. 앞서 ‘후티 PC 소그룹(Houthi PC small group)’이라는 이름의 채팅방에 예멘 공습 관련 정보가 공유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시그널 게이트로 비화했다.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실수로 시사잡지 애틀랜틱의 제프리 골드버그 편집인을 채팅방에 초대하면서 사실이 알려졌다.
시그널 게이트 이후 백악관은 “전쟁 정보도, 군사 기밀도 공유되지 않았다”며 사안을 축소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며 헤그세스 장관을 두둔했다. 헤그세스 장관이 개인 전화기로 팀 허들 채팅방을 개설·이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트럼프 행정부 고위직들의 보안 의식을 둘러싼 논란은 커질 전망이다.
시그널 게이트 관련 내부 조사를 진행 중인 미 국방부에서는 해고가 이어지고 있다. 장관 수석 고문인 댄 콜드웰, 장관 부비서실장 다린 셀닉, 스티븐 파인버그 부장관의 비서실장인 콜린 캐롤, 공보실 소속 대변인 존 얼리오트 등이 지난주에 해임·권고사직을 당했다.
숀 파넬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엑스에서 “시그널 채팅에는 기밀 정보가 없었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NYT와 쓰레기 보도를 반복하는 가짜 뉴스들이 해고된 전직 직원들을 불만을 기사 출처로 삼고 있다”며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시그널 게이트가 터졌을 때도 백악관은 골드버그 편집인의 정치 성향을 문제 삼으며 “(미국에) 해로운 사람”이라고 낙인찍었다.
미국 정부의 느슨한 보안 실태도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날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연방총무청(GSA) 직원들이 백악관 평면도 등 민감한 정보를 모든 직원이 열람할 수 있도록 온라인에 공유해왔다고 보도했다. GSA 직원들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21년부터 대통령 집무실·영부인 사무실·상황실 등의 정보를 구글 드라이브에 공유해온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