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도 버티게 하는 음악의 힘···첫 전막 공연으로 국내 관객 만난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2025-12-07

오후 3시에 시작한 공연이 오후 8시에 끝났다. 음악을 연주하는 데만 3시간50분이 걸렸고, 인터미션(휴식) 2회를 포함한 총 공연 시간은 5시간에 달했다. 일반적인 클래식 공연의 2배가 넘는다. 그럼에도 바그너의 음악이 지닌 흡인력은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을 찾은 2000여명의 관객들을 객석에 단단히 붙들어놓았다.

1865년 6월10일 뮌헨 궁정 가극장에서 초연된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조성 음악의 질서를 뒤흔드는 코드 진행을 통해 현대음악으로 가는 문을 열어젖힌 걸작으로 평가된다.

해외에서는 바그너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꾸준히 무대에 올랐던 이 작품을 국내에서는 좀처럼 온전한 형태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2012년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이 지휘자 정명훈과 함께 콘서트 버전으로 연주한 적은 있으나 무대 장치와 의상을 제대로 갖춘 전막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시향이 오페라극장의 피트(오케스트라 연주 공간)에 들어간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팬들은 12월4~7일까지 4일간 이뤄진 국내 최초의 전막 공연을 연초부터 기다려왔다.

2023년 독일 코트부스 극장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연출했던 슈테판 메르키는 원작의 바다를 우주로 바꿨다. 어둠 속에서 유명한 전주곡이 시작되면 무대 후면 스크린에 은하수가 펼쳐지고 천장에서는 영화 <스타트렉>의 엔터프라이즈호를 연상케 하는 타원형 구조물이 내려온다. “바다를 우주로, 배를 우주선으로, 파도를 별빛의 흐름으로 상상”했다는 것이 연출가의 설명이다.

바그너 오페라는 성악가들에게 엄청난 체력과 막강한 성량을 요구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두 주역이 맡은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이 같은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이날 트리스탄 역을 맡은 테너 브라이언 레지스터의 가창은 아쉬움을 남겼다. 연기는 무난했으나 고음에서 소리가 뻗어나가지 못해 오케스트라 반주에 묻히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고, 이졸데 역을 맡은 소프라노 엘리슈카 바이소바와의 이중창에서도 바이소바의 강력한 고음에 밀려 균형이 맞지 않았다.

반면 바이소바는 시종일관 공연장을 꽉 채우는 성량을 유지하며 마지막까지 극적 긴장감을 끌고나갔다. 극 전체를 마무리짓는 ‘사랑의 죽음’에서 그가 보여준 집중력은 이날 공연 전체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이었다.

조역을 맡은 국내 성악가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시녀 브랑게네 역을 맡은 메조소프라노 김효나는 투명한 고음으로 탄성을 자아냈다. 마르케 왕을 연기한 베이스 박종민의 어둡고 묵직한 노래는 무대의 공기를 바꿔놓을 정도로 존재감을 발휘했다.

바그너 오페라에서 관현악은 단순한 반주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극을 이끌어가는 강력한 목소리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인물들이 표현하지 못한 욕망까지 섬세하게 드러내야 하는 만큼, 오케스트라의 탄탄한 연주력이 필수적이다. 국내 최고의 합주력을 자랑하는 서울시향은 이날 안정적인 연주력으로 각별한 인상을 남겼다.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은 오페라 전문 지휘자는 아니지만, 2015~2018년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전곡을 녹음해 극찬을 받은 바 있다. 현악의 표현력, 목관의 노래, 금관의 힘이 조화를 이루며 바그너 관현악의 마법 같은 매력이 충분히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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