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수업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만나다

기쁜어린이도서관 관장이었던 최해숙씨는 ‘어린이책으로 배운 인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우리는 책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도 가졌다. 사람과의 관계를 깊은 신뢰로 이끌어 주는 아름다운 책 나눔이었다” 필자 역시 2017년에서 2024년까지 8년 동안 교실에서 아이들과 책으로 만나는 중이다. 매일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책 속의 내용을 재료로 우리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쌓아간다. 책 수업의 좋은 점을 크게 두 가지로 본다면 인지적인 측면과 정서적인 측면을 길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인지적인 측면은 책 수업을 통해 어휘력, 유창성, 독해력을 길러 결국에는 문해력이 향상되는 부분이다. 책을 소리 내어 읽고 책에 나온 낱말들의 뜻을 유추하며 정확하게 찾아보는 과정도 그렇다. 한 권의 책을 쭉 읽어나가며 문맥에 담긴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독해력을 기르는 중요한 부분이다.

정서적인 측면은 책에 나온 인물들에 자신을 대입하고 감정을 이입하는 과정이다. 평소의 나라면 하지 못했을 행동을 보면서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책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도 하고,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의 생각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교실 속에서 책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지적 측면과 정서적 측면의 두 바퀴가 모두 필요하다. 두 바퀴 모두 자신의 역할을 할 때 비로소 교사가 원하는 대로 조금씩, 천천히, 안전하게 굴러갈 수 있다. 최해숙 전 도서관장의 말처럼 책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마음이 이어지는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다. 진도나가기에 급급해 교과서만 바라보며 수업하던 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국어 교과서라는 자그마한 책을 벗어나 솔직한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마음 깊숙이 숨겨 놓았던 이야기들도 조금씩 꺼내놓았다. 정해진 정답을 말하는 것에서 벗어나 실제 삶이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진짜 내 소원'을 읽고 자신의 소원이 무엇인지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3학년 아이들이 바닥에 빙 둘러앉고 이미지 카드 50여 장을 가운데 펼쳐 놓았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바닥에 이미지 카드를 펼쳐놨어. 카드를 천천히 살펴보면서 자신의 진짜 소원과 연관된 카드를 한 장 뽑은 후 이야기를 나눠 볼 거야” 몇몇 아이들은 금방 카드를 선택했지만, 일부 아이들은 카드를 선택하는 걸 어려워하며 주저했다. 마침내 카드 선택이 모두 끝나고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눌 때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전 열쇠 카드를 선택했어요. 열쇠로 열고 나와 엄마와 함께 살고 싶어요” 그 아이는 가족과 떨어져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였다. 엄마를 보고 싶은 그 아이의 마음을 들으며 전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했다. 코리 도어펠드의‘가만히 들어주었어’에 나온 토끼처럼 말이다.

자신이 선택한 그림책을 읽고 마음에 든 한 문장을 엽서에 적는 시간에는 이런 문장들이 쓰였다.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읽은 아이는 ‘선생님 품에서 엄마 냄새가 났어’를 적었고, ‘가시 소년'을 읽은 아이는 ‘누구에게나 가시는 있어’를 적었다. 한 아이는 ‘미움'을 읽고 ‘너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어’를 적었다. 그 문장을 쓸 때 누구를 떠올렸을까? 문장을 꾹꾹 눌러쓰며 마음에 자리한 미움을 떠나보내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돌이켜보니 책 수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성장한 사람은 저였다. 책을 읽고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꺼내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 마음의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 보이지 않았던 아이들의 마음을 바라보고, 들리지 않던 마음을 듣는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책을 읽으며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고 안아주는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 같다. 여러분들도 서로를 깊이 연결하는 책 나눔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

채봉윤 천서초등학교 교사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